noransonamu의 남관 작품 감상평


   예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정신적 허기를 채우는 일이다. 근래에는 사실을 사진보다 더 자세하고 선명하게 나타내는 그림들이 많이 눈에 띈다. 무심하게 지나치던 슈퍼마켓의 과일들, 이웃사람들의 얼굴, 뒷골목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다버린 물건들 등, 우리의 시선을 붙잡지 못하는 의미 없는 대상들에 카메라를 들이대어 확대하여 찍어낸 것 같은 미술작품들이다. 여러 번 보았던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들이다. 사람들은 놀란다. “~ 진짜 같다!”라고 외친다. 그러나 그뿐이다. “?” 라는 물음을 작가에게 또는 보는 사람 스스로에게 묻고자 하지 않는다. 너무나 친숙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작품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나 정말 그럴까? 요즘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친숙한 이미지의 작품들 속에서 오히려 소통의 단절을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일상에서 만나는 대상들에 주목하고 관심을 갖지 못하고 오직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현상이 미술작품 앞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마주하고 있는 사람의 무심한 시선이 만들어내는 심적 거리는 광속으로 달려가도 도저히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것처럼 멀고멀다. 이미지만 바라볼 뿐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을 벗어나 여행을 하듯이 전혀 새롭고 낯선 시각세계로 여행을 떠나보고자 했다. 도착한 곳은 남관(南寬)님의 작품 세계이다. 색면과 색점들이 서로 혼합되어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낯선듯하면서 친근한 형상들이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회화의 세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형상들이 나의 시선을 끌어당겨 붙잡는다. 무심히 던져진 시선에 의해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수많은 이미지들이다. 무엇일까? 우주다! 남관의 우주. 망원경을 들이댈 필요도 없이, 무심한 시선으로 묶여버린 의식의 줄을 끊어버리고 모든 감각을 남관의 무중력의 우주 속에 던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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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관, 허물어진 고적, 74×100cm, 캔버스 위에 유채, 1964


  이 작품은 유화물감을 사용하여 캔버스 위에 그린 추상화다. 작품의 크기를 살펴보면 색면이 화면 밖으로 확산되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실제 크기보다 커 보인다. 전체적인 색은 검은색조가 도는 푸른색을 주조색으로 하여 밝기를 통해서 색면을 분할하고 있으며 색면의 경계는 인근 색이 서로 침투하여 어느 부분도 단일한 색면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검정색에 가까운 푸른 색면 위로 초록빛이 도는 밝은 면이 화면 가운데로 드러나고 있다. 화면 중간 중간에 붉은색과 회색이 감도는 밝은 비정형의 색점이 전면에 흩어져 있다. 이런 색점들은 밝은 색면보다 먼저 칠해진 듯하다. 눈으로도 감촉이 느껴지는 겹겹이 덧칠이 된 두꺼운 마티에르는 색면의 깊이를 형성하고, 물감을 캔버스 위에 부어서 건조시킨 것처럼 붓 자국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감을 붇고 건조시키는 동안, 고르지 못한 화면에서 물감이 유동하여 만들어내는 색조는 신비감을 자아낸다.


  이 그림은 세상의 어떠한 대상과도 닮아있지 않다. 그러나 마음먹기에 따라 수없이 많은 형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림이다. 그래서 수많은 색점들과 언제라도 무너질 것 같은 경계로 구분된 색면들이 만들어내는 정조(情操)는 깊고 넓다. 울퉁불퉁한 평면에서 이 세상에 존재했던 시간과 공간이 녹아든 듯한 깊이와 그 속에서 어떤 것도 두드러지지 않는 다듬어진 하모니가 들려온다. 언뜻 언뜻 만나는 붉은색의 색점들과 검푸른 색의 작은 색면들은 흥미로움과 즐거움을 준다. 여기에는 아름다운 자연도, 여인도, 의미를 지닌 물건들도 떠오르게 하지 않는다. 세상의 물상과 연결되는 그 어떤 단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보는 사람의 경험과 생각에 의한 느낌과 비정형의 형상이 있을 뿐이다. 고대유물에 서려있던 청동의 녹슨 모습, 옛 성터의 돌벽에 끼어 있던 푸른 이끼들, 내셔날 지오에 실렸던 우주의 어느 행성의 표면, 작가가 경험했던 삶의 흔적과 인고의 향기가 떠오른다. 모든 관계와 욕망이 가져다준 환희와 갈등이 뒤섞여 시간 속에 덮여있다. 존재의 덧없음과 그 흔적을 더듬는 구도자의 모습이 보인다. 모든 것을 떨쳐버리지 않고 자기 안에서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아마도 작가는 끊임없이 속으로 삭혀야할 일들을 많이 안고 살아간듯하다.  

 

  이 그림을 그린 남관은 어떤 화가였을까?

남관은 일제강점기였던 1911년에 경북 청송에서 대어났다.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1910)가 있었던 다음해이다. 일제 강점기에 유년과 청년기를 보냈으며, 일본 도쿄(東京)다이헤이요(太平洋)미술학교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일본화단으로 등단하였다. 당시 일본의 화단은 유럽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표현주의를 받아들여 혼합한 일본 특유의 화풍을 이루고 있었다. 남관의 화집을 살펴보면 1955년까지는 사실주의 경향의 정물, 인물, 풍경 등을 당시에 유행하던 후기입체주의나 표현주의 경향, 즉 반추상(半抽象)의 그림을 거칠고 과감한 터치로 표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권이 회복된 후 귀국하여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6.25동란 기간에 종군화가로 참전하면서 민족의 비극을 목도하였다. 휴전 후 1952년 일본으로 잠시 건너갔다가 귀국하여 1954년 다시 일본을 거쳐 1955년 프랑스 파리로 가서 아카데미 드라그랑드쇼미에르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추상미술을 탐구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가 44세였으며 1968년 귀국할 때까지 13년 동안 프랑스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추상미술운동인 엥포르멜미술이 풍미하고 있었고 남관 또한 이러한 열풍 속에 있었으나 그의 목표와 표현 방법은 달랐다. 그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서양의 것을 단순히 카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의 인스피레이션의 원천으로 삼고 또 하나의 윤리적, 지적, 정신적, 변혁의 기회로 삼는데 있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부단한 열정과 노력 끝에 1958년 한국인 화가로는 처음으로 살롱 드 메전()에 초대되었고, 아르퉁(Hans Hartung, 1904~1989.), 마네시에(Alfred Manessier, 1911~1993) 등과 함께 플뢰브 화랑 초대전에 참가하여 국제적인 화가로 인정을 받았다. 1966년 남프랑스의 망퉁에서 열리는 국제비엔날레에서는 피카소, 뷔페(Bernard Buffet, 1928~1999), 타피에스(Antoni Tapies, 1923) 등과 겨루어 대상을 수상하였다. 귀국 후 홍익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파리와 한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였다. 19903월 제1회 도쿄 아트 엑스포에 출품하였으며 같은 해 330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세계에 대하여 여러 비평가들이 말하고 있는 공통점은 동서양의 융합이라는 것이다.

  투명하고 무지개빛으로, 그리고 완전히 융화된 남관의 마티에르는 이 한국화가가 서양의 화법을 몸에 익히고 있음을 말해준다.”(베르나르 도리발: 파리 국립근대미술관 부관장) 남관이야 말로 서양문화를 흡수하고 또한 동양문화의 어느 일부조차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동서문화를 완전히 분리시킴과 동시에 융합시키는 거의 유일무이한 대 예술가라 생각된다.” (가스통 딜: 살롱 드 메의 창설자이며 평론가)

   남관은 한국적 정서를 서양의 추상미술로 특히 프랑스의 엥포르멜이라는 추상표현주의 회화로 시각화한 세계적인 화가였다. 그가 택한 엥포르멜미술(informel art)은 어떤 미술인가?

남관이 프랑스로 유학을 갔던 1955년의 유럽의 화단은 서정적 추상회화에 해당하는 엥포르멜미술이 대두하고 있었다. 엥포르멜이란 비정형을 뜻하는 말로서 1952년 프랑스의 비평가 타피에(Michel Tapié, 1909~1987)가 파리에서 열린 포트리에(Jean Fautrier, 1898~1964),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 6명의 그룹 전시에 앵포르멜의 의미(비정형의 의미)’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앵포르멜이라는 명칭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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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트리에. 인질. 1944.                                   드 쿠닝. 여인. 1950-52

 

  엥포르멜 미술은 추상과 구상을 구분하지 않고 색면과 질감을 통해서 비정형의 형상을 창출한다. 화면에 나타난 대립과 긴장을 통해서 인간의 욕망과 갈등이 빚어낸 전쟁이라는 비인간적인 대량살육의 참혹함을 드러내고자 했다. 작품제작 방법에 있어서도 붓자국이 만들어내는 다듬어지지 않은 비정형의 얼룩을 이용하여 색조와 질감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공간감을 형성한다. 이러한 제작행위를 타쉬즘(Tachisme)이라고 한다. 엥포르멜미술의 작품을 살펴보면 이러한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위의 포트리에의 그림과 드 쿠닝(Willem De Kooning, 1904~1997)의 작품에서는 재현적 이미지가 아니라 마티에르, 붓자구, 색채 등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형상이 나타난다.  

   남관의 작품 <허물어진 고적>에서는 이러한 재현적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져 순수한 추상적 화면을 구성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서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추상은 아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러한 화면을 보여줄 뿐이다. 남관의 생애와 작품경향 그리고 엥포르멜미술에서 그가 작품을 통해서 나타내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짐작케 한다. 그는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미술을 배웠으며 일본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일본의 화풍을 극복하고자 했을 것이다. 해방 후 정치화된 화단을 뒤로 하고 적지 않은 나이에 프랑스로 향했을 만큼 그에게는 미술로 표현하고자 하는 특별한 그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접한 프랑스의 엥포르멜미술은 그러한 그의 표현 의지에 적합한 방법을 제시하였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속의 일본의 야욕과 처참한 패망을 보았으며, 6.25동란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직접 경험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깊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인간의 욕망과 갈등, 전쟁과 죽음, 민족과 예술에 대한 그의 심연에 자리 잡은 그 무엇을 두터운 마티에르 위에서 번지고 얼룩지고 덧칠해진 색면과 색점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을 보면, 화면에 나타나는 형상이 우리나라 사람이나 풍경을 닮아있기도(아래그림 왼쪽) 하고 문자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아래 그림 오른쪽) 같기도 하다. 이러한 형상들은 그의 삶 속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명료한 의식으로 관념화하고, 그 관념들을 시각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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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 1961, 80.5×64. 개인소장                        무제. 115×72. 1980. 유족소장

 

   위의 작품<허물어진 고적>에서는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어떠한 형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과 의지가 만들어낸 유물을 허물어버린 시간이 보일 뿐이다. 한번 지나간 시간은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과거의 존재에 대한 기억만은 면면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시간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역사의 흔적만이 되살아난다. 아프고, 슬프고, 견딜 수 없을 만큼 암울했던 기억들이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 다시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둠 속에서 부상하는 넓은 색면 - 새로운 역사, 새로운 시작을 보이고 있다.

   이 그림 속에서 나는 미래를 본다. 허물어진 과거 위에 희미하게 떠오는 희망을 보고 있다. 이 작품이 제작되던 때의 우리나라의 상황도 이러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 나의 내면에 일어나고 있는 치졸한 서운함과 원망들, 불숙불숙 솟아오른는 욕망들을 시간 속에 넣어 정화시키고 조용히 미래라는 거대한 우주를 바라본다. 다 허물어질 것들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 남겨질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불화와 미움일까 아니면 화합과 사랑일까? 이 작품은 나에게 역사는 사랑과 미움이 만들어내는 흔적이며 역사는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어느 시대를 살던지 그 근본적인 내용은 동일하게 반복된다고 말한다. 단지 그 옷을 갈아입었을 뿐이며 그 옷은 낡아질 것이니 외형에 속지말고 저 우주 속의 영원을 느껴보라고.

   남관은 자신의 삶이 녹아든 이 작품을 통해서 자아에 얽매인 이기적이고 편협한 시선으로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지 말고 구도자의 마음과 과학자의 눈빛을 갖추라고 한다. 그것이 이 무중력의 우주에서 미움과 다툼을 버리고 살아갈 수 있는 지혜이며 이 거대 우주 속에서 속절없이 사라질 생명들을 이유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출처] 미술작품감상-남관 |작성자 noranso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