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도 파리에 먼저 온 화가 남관씨를 만났다.

 

씨는 1955년 봄 이곳에 온 후로 꾸준히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그동안 1955년과 56년에 파리 '국제미술전'에 출품했다.

그는 1년 전부터 생활의 곤란을 느껴오는 터이지만 그의 성격은 이를 견디어 왔다.

 

나는 어느 날 그의 화실을 방문했다.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나 찾아가서 만나고 이야기를 했다. 화실이라고 해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고 침식을 같이 해야 되는 방인 것이다. 처음가면 정이 떨어질 정도로 퇴락한 방이지만 갈수록 정다운 맛이 든다.

 

나는 그에게서 예술의 궁극을 지향하는 심오한 태도를 보았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 그리고 역사가 보여준 것과 같이 우리들의 씨름의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에 논리의 타당성에 의거해서 결과가 주는 가치에만 도취한다면 필경 작가가 연구과정에서 발견하는 어떤 발전과 부수하는 생()의 희열을 망각한 저열한 예술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남관씨는 그 작품태도가 그 작품이 어떤 자연스러운 순환속에 생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자신을 이해하고 자기의 것을 가지고 있는 생과 예술의 철저한 철학에 입각하고 있는 것 같다.

 

작품은 작가를 대변한다. 화면에 이론을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작품에는 그 자체의 세계가 있다. 결과의 우열은 행·불행을 자아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각자에 있어서는 피상적인 것이며 생외가치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다.

 

남관씨의 작품에는 색이 요구되어 있지 않다.

거기엔 아무런 수식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일관하는 것은 소복이다. 현대회화의 공통된 이념의 하나라고 할까- 그것은 이미 시각적인 것에서 극히 이지적인 것이 요구되었고 파리의 새로운 화단의 색조가 흑과 백과 회색이 화면을 휩쓴다고 하면 씨의 화면 역시 그렇기도 하다.


나는 어느 날 그와 같이 석양 아래 룩상부르크공원을 거닐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은 우리들의 침묵을 깨트린다.

가을이 주는 고별! 무수히 서 있는 섬세한 조각은 고인돌을 생각한다. 지난날에 건재했던 그대들이여! 당신들이 남기고 간 작품 앞에 침묵 속에 잠긴 채 가버린 많은 인종들이 물결과 같이 스쳐가고 또 한해가 저물어 간다-

 

낙엽을 밟고 흰 길을 따라 두 사람은 천천히 걸었다. 씨는 얕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술이니 그림이니- 내 그림 같은 것이- 그 까짓 거-”

 

고생보다도 차라리 조그마한 따뜻한 생활이 그리운 심정의 한토막일까?

 

화가여! 그대의 생애는 부지런했건만-

 

! 아이들이 보고 싶어-”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엿보인다. 그러나 예술을 부인함도 아니오, 생애를 원망함도 아닌 그는 지금 저무는 파리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다.


출처 : 1957년 11월 6일 경향신문에 실린 장두건씨의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