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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x13cm 종이에 수채 1978

갤러리H 개관기념 남관전(2015.04.21-05.19)

- 채색드로잉:비정형의 아름다움 전시작품


전시서문 ;

2015년 4월 홍대 총동문회 갤러리 H의 개관 기념전으로 열리는 남관 선생님 전시는 앵포르멜 추상 양식의 수채와 수묵 드로잉 작품으로 이루어진다. 선생님의 채색 드로잉 특징은 유화처럼 물성이 강조되는 마티에르(물감의 두께) 효과보다 자유로운 선묘와 투명한 색채 감각이 돋보이는 작업이다. 특히 작은 사각의 화면에는 우연과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생명력 있는 유기적이며 독립된 형태들로 선명한 색채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60여점의 드로잉은 1960년 이후 주목되었던 무의식에 의한 비정형informel 추상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는 선생님의 대표적 채색 드로잉 작품들이다.


전시 서문을 쓰는 필자와 남관 선생님과의 만남은 스승과 제자로 1970년대 초반 홍익대 학부 실기실에서이다. 말씀이 적었던 선생님은 작업하는 우리 모습을 몇 시간이나 지켜보시곤 하였다. 누구보다 추상의 이론적 체계와 작업의 기본을 강조하시었던 선생님은 진정한 교육자이었으며, 추상미술의 도입을 통한 한국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존경스런 분이었다. 선생님 말씀 중에 우리에게 왜 추상화인가라는 본질적 질문과 해답을 요구하셨던 내용이 특히 기억에 남으며, 열심히 그리는 것만이 아니라 현대회화의 이론적 연구의 필요성이나 추상의 다양한 표현 방법의 중요성에 관해 열정적으로 지도해주시고 설명해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 드로잉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당시 석고 소묘에 친근하였던 우리에게 드로잉은 낯선 작업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겁도 없이 추상미술의 모험에 뛰어든 우리에게 소묘보다 드로잉의 중요성을 자주 이야기하셨다. 특히 드로잉은 습작이 아니며, 소묘와 달리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종종 선생님은 비정형의 자유로운 미적 표현으로 색채 드로잉을 직접 보여주셨다.


이번 남관 선생님의 드로잉 전시는 무채색의 흑백 작품들과 다양한 색채의 수채 드로잉 작품들이다. 선생님의 대부분 채색 드로잉은 밝은 것이 특징인데, 이번 전시에는 어둡거나 불투명에 가까운 작업도 보인다. 대부분은 수묵과 수채화가 갖는 밝고 투명한 느낌을 최대한 살리면서 무채색 속에 선명한 빛줄기처럼 강한 붓터치가 보이는 드로잉 작품들이다. 지난날 우리들 실기실에서 선생님은 무채색이나 어둡게 혼합된 중간색보다 용기를 갖고 순수의 원색으로 화려한 색채 실험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선생님의 채색 드로잉처럼 색채의 투명성이 의미하는 것과 같은 맥락처럼 생각된다.


또한 덕수궁 돌담길을 예로 들면서 비정형 작업을 설명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돌담에 낀 푸른 이끼들, 그 속의 어떤 형상을 흉내 내거나 묘사하기보다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돌담의 균열이나 오래된 이끼의 느낌을 물감의 두께인 마티에르를 통해 표현하고 시간의 흐름을 담는 상상력의 작업이 앵포르멜, 즉 비정형informel의 추상화라는 것이다. 앵포르멜은 원칙상 대상의 사실적 묘사나 재현적 형태를 거부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드로잉작품 가운데 사람 얼굴이나 문자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 이는 사람얼굴이나 문자처럼 보이기도 하나 사실 구체적인 대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우연과 상상력의 산물인 것이다. 의도된 형상처럼 보이는 것들이 우연과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형태의 유사성으로 감상자와 상상력을 자극하게 되는 작품들이다.


아울러 남관 선생님의 비정형 채색 드로잉은 유화를 그리기 위한 밑그림이 아니다. 흑백과 채색의 수채 드로잉 작품은 유화와 같이 그 자체로 완벽한 '추상abstraction'이다. 어떤 형식과 규범에서 벗어난 채색 드로잉은 작가의 정신적, 신체적 행위의 감정 표출이 더욱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작업이다. 투명한 색채의 아름다움과 자유로운 붓놀림으로 펼쳐지는 선생님의 드로잉은 무의식적 행위를 통한 비정형의 결정체를 담은 보석 같은 작품으로 오늘날 역시, 추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충족시킬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유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