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5580569&cp=nv<<사람처럼 이것저것 다 먹는 잡식성 동물은 없는 것 같다. 잡아먹고, 뜯어먹고, 심어먹고, 구멍 뚫어 받아 마신다. 그뿐이랴. 말리고, 절이고, 삶고, 구워 먹는다. 그러다가 드디어 조리라는 것을 알면서 맛의 차원이 달라졌다. 이어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빛이 맛을 연상케 함으로써 음식의 모양도 중요시하게 되었다. 인간의 창조 본능이 조리를 예술로 만들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초창기 서양화가들은 외국, 특히 프랑스와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요리를 경험한 분들이 많다. 이들 중에는 “요리도 창조작업이기 때문에 화가들이 음식을 잘 한다”고 뻐기는 분들도 있다. 대표적인 분이 남관(1911∼1990) 선생이다. 파리에서 갓 귀국해 서울 부암동 언덕에 프로방스 스타일의 화실을 마련해 살고 계실 때 점심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친구와 같이 가겠다고 청했더니, 기꺼이 승낙하셔서 사진가 강운구와 같이 갔었는데 부부가 환한 얼굴로 맞아 주셨다.

부인은 시인 김광섭의 따님인 소설가 김진옥 여사다. 화가 남관은 피카소와 모습이 꽤 비슷하고, 특히 눈빛이 닮았다. 피카소는 말년에 남불 안티브에서 옛 성을 화실 삼아 살았다. 당시 프랑스 유명 화가들이 꽤 많이 지중해 연안 도시들, 이를테면 칸에서 니스, 망통에 이르는 바닷가에 화실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마티스와 샤갈은 칸에, 장 콕토는 망통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 가운데 망통시는 비엔날레를 운영했는데, 남관 선생은 1966년에 여기서 피카소, 드 뷔페, 타피에스 등을 물리치고 대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림 얘기를 하다가 남 선생께 “피카소와 비슷한 모습이다”고 했더니 기뻐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탐탁해 하지 않으셨다. 그러면서 유명 작가들에 대한 품평을 늘어놓으셨다. 피카소 그림은 너무 상업성이 있어서 좀 언짢지만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샤갈은 좀 모자란다, 오히려 미국의 잭슨 폴락이 더 좋다는 게 아닌가. 아마 당시 앙포르멜 경향의 작업을 하실 때여서, 일러스트레이션의 요소가 강한 샤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런 이야기 끝에 부인 김진옥 여사와 결혼생활을 한 파리 시절의 와인과 바게트의 맛을 얘기하면서, 여러 재료를 이것저것 섞더니 족보 없이 색깔만 화려한 음식을 쓱 만들어 내셨다. 그러더니 “음식도 말이야, 이렇게 그림 그리듯 색을 잘 맞추고, 간을 잘하면 맛있게 되는 거야”라며 맛을 보게 하셨다. 와인과 함께 예술성 충만한 음식을 얻어먹고, 조그만 수채화 한 점 씩 얻어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다가오는 25일은 남관 탄생 100주년이다. 마침 환기미술관에서 유화 80점과 드로잉 70점으로 기념전이 열리고 있다. 아무도 걷지 않은 추상미술의 길을 묵묵히 개척한, 나에게는 스승과 다름없는 그가 그립다. 나에게 선물한 그림을 꺼내보며 앞서간 예술가의 위대한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국민일보 2011.11.23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5580569&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