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김기승 탄생 100주년 기념전
이 땅에서 글씨는 유명해도 글씨를 쓴 사람을 기억하는 이들은 드물다.

20세기 중후반 국내 글씨판을 주름잡았던 서예가 원곡 김기승(1909~2000)의 힘찬 ‘뭉툭 글씨’는 서예가에 대한 세간의 무지를 입증하는 반면교사일 터다. 한국인들은 바싹 마른 먹붓으로, 뭉툭하게 획을 툭툭 내친 특유의 원곡 글씨체에 친숙하다. 톰슨 성경, 소설책 <대망> 등의 표제, 고깃집 등의 간판 글자 상당수가 원곡체다. 그런데 정작 이 글씨체가 한 서예 거장의 90 평생과 정신이 녹아든 산물이라는 사실은 잊혀진 지 오래다. 연부역강한 청년 시절 도산 안창호에게서 배운 무실역행 정신, 왕희지를 전후한 고대 중국 글씨의 진수를 두루 섭렵한 내공, 복음서·불경 등의 가르침을 평생 글씨 화두로 닦아온 그 예술혼을 사람들은 모른다.

‘원곡체’로 대중의 사랑받아
시기별 대표작·유품 등 선봬

지난 17일에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시작한 원곡 김기승 탄생 100주년 기념전 ‘말씀대로’는 이미지로만 유명해져버린 원곡 글씨 바로보기의 계기로 삼을 만하다. 박력과 강약의 리듬감으로 채워진 원곡체의 형성 과정을 전하는 시기별 글씨 대표작들과 심오한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유품, 문화계 지인들의 교류 작품 등이 함께 자리 잡았다.


전시의 고갱이는 2층을 메운 1950~60년대 서체 수련기·실험기 글씨들이다. 원곡체의 뼈대가 된 중국 고대의 갑골·종정문(짐승 뼈에 새긴 원시 한자) 글씨들이나 스승 소전 손재형의 필법에 바탕한 진·한나라풍의 전서체에서 이미 획의 단단한 전형성이 나타난다. 뒤이어 보이는 <천상천하유아독존> <묵영> 연작 등의 실험적 글씨들은 서예 본질인 추상성을 다시 불러들였다고 고인이 회고했던 작업들이다. 여러 먹색의 글자들을 중첩시키고 글씨 형상도 구름, 용, 여체 등 사물 모양과 기운대로 옮겨 1960년대 미술계 논란까지 빚었던 극단적인 추상 서체들이다. 여초 김응현 등 기존 서예계 작가들이 이를 이단시한 반면, 남관 등 소장 화가들이 원곡의 파격을 지지한 일화가 알려져 있다.

3층은 전형적인 한글 글씨체 중심이다. 대표작인 로마서 성경 글씨인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믿음 소망 사랑’ 등의 글씨들은 획 사이의 옹근 짜임새와 붓놀림의 압박감이 우러나온다. 먹물을 예수의 피로 착시했다고 고백할 만큼 성경 말씀을 밤낮 글씨로 옮겼던 크리스천이지만, 원곡은 끓어넘칠 듯한 필선으로 아침저녁 관세음보살을 생각한다는 글씨를 쓰면서 폭넓게 고금 종교를 탐구했다. <노자도덕경> <맹자> <전도서> 등 일일이 베껴 쓴 각종 종교서 필적들은 타계 때까지 매일 새벽 이들 책 구절들을 옮겨쓰면서 정신의 벼리를 놓지 않았던 일면을 드러낸다. 이동국 수석큐레이터는 “원곡은 글씨의 조형성에 빠지지 않고, 동서의 종교사상을 예술적으로 실천하려 애썼다”며 “전형과 개성이 공존하는 원곡체의 힘은 그런 실천의 산물”이라고 평가한다.

이 밖에 고암 이응로가 그려준 <묵란도>, ‘글씨의 즐거움이 최고’라는 김환기의 전시 축하글, 먹바림이 돋보이는 월북작가 정종여의 <화조도> 등이 원곡과 당대 예술계 인사들의 교류상을 증언한다. 1948년 원곡이 고암, 운보 김기창, 김영기 등과 어울리다 취흥에 겨워 글을 쓰고 그렸다는 가로 2m 넘는 대작 <화조도>는 당시 화단의 교류상을 전해주는 주목할 만한 합작품이다. 8월16일까지. (02)580-166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