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과 친구들"전 서귀포전시관서/쪽문너머엔 외롭고 그리운 삶의 흔적이…[한국일보] 2003-03-12 55면  총10면  문화  1623자
그림 '섶섬이 보이는 풍경'의 오른쪽 아래, 지붕이 보이는 초가는 바로 이중섭(李仲燮·1916∼1956)이 살던 집이었다. 초가 오른쪽에 딸린 쪽문을 열어본다. 아궁이 두 개가 있는 부엌에 바로 잇댄 방 한 칸. 1.4평이라 했다. 몸피 좋은 사내 하나만 드러누워도 꽉 차버릴 만한 공간이다. 1951년 전쟁에 쫓겨 제주도 서귀포로 온 이중섭은 이 단칸방을 얻어 부인과 5살, 3살짜리 두 아들 등 네 가족이 1년 여를 살았다. 바닷가로 나가 해초를 캐고 게를 잡아 주식으로 삼았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의 화면을 3분의 2 이상 차지하며 가지를 길게 뻗고 있는 커다란 팽나무 두 그루는 지금도 초가 마당 앞에 그림 속 모습 그대로 서 있다. 그림 오른쪽 위 바다 뒤로 보이는 것이 섶섬이다. 방 왼쪽 벽면에 이중섭의 시 '소의 말'이 붙어있다.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이중섭의 서귀포 초가를 방문해 본다면 누구나 삶의, 예술의 현장성을 절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담뱃갑의 은박지를 못이나 침으로 긁어 그린 후 유채를 입혀 메운 이중섭만의 기법인 은지화(銀紙畵)는 전쟁의 참혹성이 낳은 산물이다. 은지화 '게와 가족'은 바로 이중섭이 서귀포 시절을 회상하며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함께, 궁핍함 속에서도 간직했던 어떤 낙원에 대한 동경을 나타낸 그림일 것이다. 1952년 7월 일본인 부인과 두 아들이 일본으로 간 뒤 4년 만에 이중섭은 마흔의 나이로 서울 적십자병원 시체실에 무연고자로 방치된 채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삶을 마감해야 했다.

50여 년이 지나 그가 한 시절을 보냈던 서귀포 초가 바로 오른쪽 언덕에 '이중섭전시관'이 세워졌다. 초가는 아직 이 집에 생존해 살고 있는 집 주인 김순복(83) 할머니의 증언으로 원형대로 복원됐고, 집 앞 길은 '이중섭 거리'로 명명됐다. 친구들도 찾아왔다. 죽은 이가 더 많지만 이중섭과 친구들은 그림으로 서로 만났다.

이중섭전시관에서 5일 개막해 5월31일까지 열리는 '이중섭과 친구(親舊)들' 전에는 이중섭의 유화 2점, 은지화 3점, 엽서화 2점, 드로잉 1점 등 원화 8점과 그의 동료, 후배 작가 29명의 작품 65점을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해 11월 개관한 이중섭 전시관이 고인의 원화 한 점 소장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긴 이호재(49) 가나아트 대표가 1월 기증한 작품들이다. 값으로 치면 수십억 원대에 달한다. '친구들'은 권옥연 김병기 김환기 남관 박고석 박생광 박수근 이응노 장리석 장욱진 전혁림 중광 최영림 하인두 한묵 등이다. 모두 이중섭과 어려운 한 시절을 공유했던 작가들로, 그들의 전시작은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표현대로 "내일이 없는 오늘에 있어 한 가닥 생명에 충실하려는 조형적 표현"이 절실하다.

이중섭과 초등학교 동기동창이자 일본 도쿄문화학원에서도 함께 수학한 김병기(87) 화백은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해 "중섭이 숨졌을 때 나이 40과 당시 내 나이 40을 더해도 지금 내 나이가 안 된다"고 세월의 흐름을 증언하며 "중섭의 에너지는 지금도 우리 가슴에 풀리지 않는 신화"라고 말했다. 이중섭전시관 (064)733―3555
/서귀포=하종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