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회화정신을 찾아…조선화랑 30주년 기념전[국민일보] 2001-10-19 20면  총01면  문화    1410자
조선화랑(대표 권상릉·67)이 30주년을 맞았다.지난 71년 조선호텔에 둥지를 튼 이래,청담동 시대를 거쳐 현재 삼성동 코엑스몰 임시거처까지 강산이 세 번 변했다.조선화랑의 역사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 현대 화랑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비슷한 시기에 개관했던 화랑중 아직까지 남아있는 화랑은 갤러리 현대가 유일하다.한국 미술시장을 개척한 화랑 1세대인 셈이다.30여년 동안 국내외 작가 300여명의 기획전시를 개최했고,벌써 80년대초에 한·불 미술협회를 창설하며 국제교류전을 시작했다.조선화랑이 개관 30주년을 맞아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18일까지 ‘70년대 회화정신 전’을 개최한다.70년대를 주제로 잡은 것은 시대를 함께 했던 화가들을 회고하고,우리 미술의 발자취를 더듬기 위해서다.권상릉 사장의 말을 빌면,“춥고 배고팠던 어려운 시절을 함께 지낸 분들의 작품을 모았다”고 한다.
초대작가는 모두 12명.김환기를 필두로 남관,문학진,권옥연,김흥수,박항섭,변종하,오지호,윤중식,이대원,최영림,하인두다.조선화랑과 개관초부터 끈끈한 정을 쌓아온 작가들이며,한국 현대미술의 태두들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고(故) 하인두 화백(1930∼1989)은 어느 글에서 “조선화랑에 가면 오래전에 있던 내 작품이 이끼낀 돌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회고한 바 있다.하화백은 지금이야 한국추상의 한 경지를 개척한 거장으로 인정받지만,당시만 해도 팔리지 않는 그림을 그리던 배고픈 화가였다.72년 우리 화단에서는 처음으로 여성화가들을 모아 마련했던 ‘여류작가 12인 초대전’은 당시 큰 화제를 불러모았고,이 전시회를 모체로 한국여류작가회가 발족했음은 화단에 널리 알려진 일이다.이외에도 원석연전,송영방,김동수,신영상 등이 참여한 동야화 7인전,김태,박석환,최경환 등이 참여한 서양화 7인전,일본 7개도시 한국회화전,손일봉 유작전 등도 조선화랑이 일궈낸 작은 업적들이다.
이번 전시에 나오는 작품들은 25점 정도.윤중식의 ‘노을’은 20년 이상 한 소장가가 보관하고 있던 작품으로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했고,김환기의 ‘11―Ⅳ―74’는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또 하인두의 ‘만다라’나 최령림의 ‘부부’,변종하의 ‘무제’ 등도 대가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권사장은 “처음 만났을때 삼,사십대의 정예들이 칠,팔십대를 바라보는 노년이 됐고,미처 못다 피운 한을 남긴채 유명을 달리한 작가들도 있다”며 “그들의 회화정신이 있었기에 오늘이 존재한다”고 회고했다.
3번이나 화랑협회 회장을 역임한 권사장은 96년 서울국제아트페어(SIAF)를 개최했고,청담미술제를 열었으며,화랑협회내 정기경매를 도입하는 등 미술시장의 기초를 닦았다고 평가된다.권사장은 “이제 나이도 있으니 현장은 젊은세대에게 물려주겠다”면서 “다만 성격있는 미술관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앞으로의 바람을 말했다(02―6000―5880).
남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