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서구의 전후 추상미술전[한겨레] 2000-03-15 34면  총04면  문화    1205자
그들은 낡은 미학의 전복을 꿈꿨다장 뒤뷔페, 포트리에, 마티유와 잭슨 폴록 그리고 박서보와 남관과 이응로까지.

한국과 서구 추상미술의 한 정점을 장식했던 거장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인다. 2차대전 이후 미술사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던 유럽의 '앵포르멜' 미술과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운동을 중심으로 한 '한국과 서구의 전후 추상미술:격정과 표현'전이 오는 17일부터 5월14일까지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참여작가는 우리나라에서 권옥연, 김창열, 남관, 박서보, 윤명로, 이세득, 이응로, 정창섭, 최만린, 최욱경씨 등의 작품 36점이, 외국작가로는 카렐 아펠, 장 미셀 아틀랑, 장 뒤뷔페, 장 포트리에, 잭슨 폴록, 조르주 마티유, 앙리 미쇼, 안토니 타피에스 등의 작품 34점 등 모두 70점이 전시된다. 특히 실존철학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1944년 이후 인간 존재의 갈등을 파격적인 형식으로 표현한 볼스의 (니렌도르프)를 비롯해 국내에선 만나기 힘들었던 뒤뷔페, 포트리에의 작품 등이 이번 전시회를 더욱 빛내준다.

앵포르멜 미술은 2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등장한 서정적인 추상의 한 흐름으로 전후세대와 실존주의가 만나면서 일어난 문화형식이었다. 앵포르멜은 또 그 이전까지의 정형화된 기하학적 추상에 반기를 들면서 비정형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을 했다. 함께 전시되는 미국의 잭슨 폴록, 프란츠 클라인 등의 추상표현주의는 뜨겁고 격정적인 추상미술을 주도했던 몇몇 미국 작가들을 묶는 것이다.

이 두가지 서구 미술경향은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6.25 이전 추상은 유영국, 김환기 화백 등 몇몇이 독자적으로 시도하는 수준이었지만, 50년대 접어들어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 등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추상미술은 그야말로 대세를 이루게 된다. 그런 흐름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작가들이 바로 60년대 이후 우리 미술계를 주름잡은 이른바 모노크롬을 비롯한 추상 작가들로서 이들은 상업적 성공과 명성을 얻었다. 일본에서 미술을 배운 원로들과는 다른 차별성과 정체성을 원했던 50~60년대의 아카데미즘 1세대들은 유일한 대안으로 앵포르멜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전후 추상미술전'은 이처럼 우리 미술사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서구 추상회화의 주요 작가들과 이를 받아들여 우리 미술계의 주역으로 성장한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비교해보는 모처럼의 기회일 것이다. (02)771-2381.

구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