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미술품경매주도 크리스티·소더비사/“한국 고미술품시장을 잡아라”[경향신문] 1994-11-18 25면  문화    2603자
◎수요급증속 예술성도 평가/“잠재력 무한” 물량확보총력/지사설립·서울경매 추진 국내외 주목『한국의 미술품시장을 노려라』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크리스티사와 소더비사가 한국내 지사설립은 물론 서울경매까지 계획, 한반도에서 사운(사운)을 건 일전불사를 선언하고 나섰다.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이처럼 한국미술품에 대해 눈독을 들이는 것은 한국의 국력신장에 따른 수요증대와 함께 한국미술품의 희귀성과 독창적 예술성 등으로 성가가 높아가고 있기 때문. ○낙찰가 “천정불지”
80년대 후반 국제경매시장에 한국미술품이 중국과 일본 등 「동양미술품」에 끼여 첫선을 보인지 불과 10년도 채 안돼 초강세를 기록, 맥빠진 국제미술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뉴욕 현지 미술시장에서 「불황속의 기현상」이라 불리는 이같은 한국미술의 인기는 91년 10월 소더비의 한국미술품 단독경매에서 14세기 고려탱화가 1백76만달러(한화 약 14억원)에 낙찰되면서부터 천정부지로 솟기 시작했다.

이에따라 크리스티와 소더비는 「한국부」를 설치하고 1년에 2차례씩 한국미술품 단독경매를 벌여 오고 있으며 경매 이전에 한국미술애호가들을 위한 사전전시도 빼놓지 않고 있다.

한국미술품 경매의 신기원은 지난 4월 28일의 크리스티경매. 조선초기의 국보급 청화백자 1점이 세계 도자기사상 최고가인 3백8만달러(약 24억원)에 낙찰됐다.

이 경매에선 예정가 10만∼15만달러(약 8천만∼1억2천만원)였던 고려청자 주전자가 1백20만달러(약 9억6천만원)에 낙찰됐으며 내정가 8만∼10만달러(약 6천4백만∼8천만원)였던 분청사기 1점이 18만9천달러(약 1억5천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또 지난달 25일 뉴욕의 크리스티경매에서는 12세기 고려시대의 매병청자가 예정가 40만∼60만달러를 훨씬 넘어선 79만4천5백달러(약 6억3천만원)에 팔렸으며 박수근화백의 「시골마을」이 예정가의 2.5배가 넘는 26만6천5백달러(약 2억1천만원)에 낙찰됐다.

이 때문에 12월 5일로 예정된 소더비의 한국미술품경매에 벌써부터 세계적인 미술품수집가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최근의 미술품경매에서 주목되는 현상은 한국의 고미술품은 물론 현대미술품들이 한국미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박수근을 비롯해 도상봉 김환기 이응노 남관 김흥수 이대원화백 등의 작품이 뉴욕 경매시장에 등장해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면서 고가에 팔리고 있다. 91년 이래 뉴욕경매에서 팔린 한국미술품은 크리스티가 5백여점, 소더비가 1백80여점 등이며 낙찰가격은 모두 3천만달러에 이르고 있다.

지난달 19, 20일 호텔 신라에서 열린 한국경매미술품의 사전전시차 서울에 왔던 크리스티의 한국미술품담당인 샤바스천 이자드부사장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덜 알려졌던 한국미술품의 인기가 급상승해 10년전에 비해 가격이 10배 이상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국미술품의 관심 고조엔 이밖에 침체된 미술품시장을 부양해 보려는 미술시장 큰손들의 전략도 한 요인으로 조심스럽게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미술품의 출처나 행선지는 공개경매관행과는 달리 소장자와 매입자 비밀보호원칙에 따라 철저히 베일에 싸여져 있다.

○일본인 큰손들 관심
따라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소장되지 않는 한 미술품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뉴욕의 경매관계자들은 한국미술품의 소장자는 아직도 일본인이 많고 매입자역시 일본인 큰손들이 많은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최근들어 한국인들도 국제미술품시장에 눈을 떠 고미술품들을 사들이는 경우가 있다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한편 소더비는 90년 종로구 인사동에 한국지점(지점장 조명계)을 열고 한국미술품경매에 대한 홍보 및 정보수집 등 의욕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인상파는 물론 현대회화와 악기 판화, 한국과 중국의 서화와 골동품 등 국내에 배포하는 자료만도 연간 30여종에 이르고 있다. 지난 9월 29, 30일엔 하얏트호텔에서 국내 미술품 애호가들에게 오는 12월 경매에 붙여질 한국미술품 등을 선보였다.

크리스티 역시 한국지점의 개설을 목표로 외국인 투자신청을 마치는 등 오래전에 준비작업에 들어갔으며 주베네수엘라 대사를 역임한 외교관출신 임명진씨(67)를 자문역에 위촉했다.

임씨는 『크리스티의 한국지점 설치는 이르면 내년안에, 늦어도 96년 안엔 실현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 두 경매사는 이미 한국시장의 무한한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 한국미술품의 확보에 주력하고 나서 국내외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0%세금 반입막아
문제는 한국의 경우 외국과는 달리 세금계산서에 주민등록번호와 사업자등록번호를 명기해야 하기때문에 소장자와 매입자가 쉽사리 노출될 수 있다는 점. 외국선 경매사가 세금을 납부해주면서 신원을 노출시키지 않고 비밀을 지켜주고 있다.

또 문화재를 수입할 경우 10%의 세금을 물어야 하는데 이 역시 정부가 권장해야 할 문화재 반입을 오히려 막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은 국제화·개방화의 물결에 휩쓸려 언젠가 풀리고 만다는 관측이다. 때문에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한국내 경매 역시 이러한 점을 고려해도 6∼7년 안에 성사되리라는 것이다.

아시아에선 일본 홍콩 싱가포르에 이어 서울에서도 금세기 말쯤엔 경매에 의한 세계미술시장이 선다는 얘기다.【뉴욕=박수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