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예술가를 소개하는 기쁨


사람들은 흔히 어떤 일에 대하여 반대로 생각하기 쉽지만 한 친구에 관해 언급할 때는, 그의 삶 전반에 걸친 평가를, 면밀한 분석을 할 수 있으므로, 보다 엄중한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바로 나와 남관화백이 그 경우이며, 나는 그와의 은연하면서도, 두터운 우정에 대해 열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58년, 59년경, 본인이 주관한 “쌀롱 드 메”에 처음으로 작품을 출품했을 때라 생각됩니다. 어렵고도 극히 제한된 그 살롱이 남관의 작품을 아주 열렬히 맞아 들임으로써, 나는 그를 자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프랑스에는 물론, 국제 무대에서의 괄목할만한 그의 두각을 지켜 볼 수 있었습니다.


남관은 자신의 그 빠른 성공에도 무관심하였겠지만 나는 그것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었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빠리의 끊임없는 심미적 유혹의 물결에 휩싸이지 않고 자기의 세계를 지켜 나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나는 지금에 와서 더욱 더 남관의 끈질긴 작업의 성공을 결정적으로 단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껏 나의 몇 차례 방한은 직접 그곳에서 그의 과거와 현재에 연결된 다양성 있고 풍성한 세계에 대해 정당히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몇몇 화가들의 아틀리에에도 들를 기회가 있어 그들 탐구의 독창성과 특수성의 진가도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남관의 명철한 예지로 이룰 수 있었던 그의 독특한 위치에 대해 극구 치하를 보내는 바입니다.

 

남관이야말로 서양문화를 흡수하고 또한 동양문화의 어느 일부조차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동․서양문화를 완전히 분리시킴과 동시에 융합시키는 거의 유일무이한 대 예술가라 생각됩니다.


그는 민족 문화유산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무언가 다른 일면을 불어 넣어 용솟음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는, 꾸준한 인내로 여유 있게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상형문자를 창출해내기에 이른 것입니다. 새로운 상형문자란 생동하는 기호들로 구성된 필체로서 신비스러운 형체와 상징적인 세공으로 고동치는 유기체의 모습을 차례차례로 띄는 유연한 단편조각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긴 띠처럼 펼쳐져 나가는 것입니다. 흡사 뱀의 파동과도 같은 이 필체의 전개가 최근에는 간혹 율동적이면서도 장중한 격막 구조로 보이나 눈에 생소한 콜라쥬로 탈바꿈 되었습니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서양에서 사용되는 색이 자아내는 환희를, 몇 곱이나 초월하는 정묘한 색으로 마음껏 만들어 내어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전쟁의 상흔과 비애를 점차 저버리면서, 그는 자신의 고유한 군청색계와 같은 저항할 수 없는 매력적인 색조의 배합으로 선경의 경지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질과 능력을 최대로 개발하면서, 이제 그는 원숙의 절정, 눈부시게 찬란한 충만감, 색의 섬광을 주저없이 흡수해내는, 진정한 환희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늘 그에게서 좋아하는, 청렴결백함과 아울러 무언의 작업에 대한 그의 취향에 완전 일치되는 이 비범한 표현은 추호도 인위적이거나 거저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으로 믿습니다. 남관화백이 전일생을 통해 추구했고 또 전달하고자 했던 이 “메세지‘는 오늘날 격변하는 세상이 그토록 필요로 하는 참된 구도정신과 용솟음치는 진정한 열정의 메시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미술평론가 가스똥 디일

                                                                                                                                                                                                              〈李 逸 譯〉

                                                                                                                                                                                                                     197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