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추상미술의 두 거장을 만나다
[서울경제] 

이응노·남관 화백… 2인전 '동행'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서
같은 길을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행보가 순탄할 수 만은 없다. 라이벌 뿐 아니라 동료도 그렇고 심지어 부부도 마냥 좋을 수 만은 없다.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거장으로 꼽히는 이응노(1904~1989)와 남관(1911~1990) 화백도 그랬다. 동시대 작가인 두 사람은 1950년대 중후반 파리로 건너가 활동한 이력이 비슷했고 한때는 절친했다.

화풍과 역사적 맥락의 공통점도 있다. 하지만 1973년 이응노가 한 일간지에 '창작과 모방'에 관한 기고글로 남관을 비판하면서 우정은 깨졌다.

더 이상 모방논쟁은 의미없어졌지만 그래도 둘은 먹과 우리식 손맛으로 인물상을 만들어 내는 데 능했고 고대 문자에서 착안한 조형성, 한국적 색감의 발현이 탁월했다.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열리는 2인전 '동행'을 통해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응노의 '서예적 추상'은 필연이었다. 15세에 당대 명가 염재 송태회에게서 처음 먹을 배웠고 청년이 되어 남평 김규진 문하에서 죽사(竹史)라는 호를 받았다. 대나무 그림을 주로 그리던 작가는 1931년 조선미전에서 황실 최고상을 받았다. 이후 그는 식민지와 조국, 분단과 민족에 대한 시대정신을 변화무쌍하게 표현했다.

스스로 "20대는 전통화와 서예 기법을 기초로 한 모방시기라 하면 30대는 사실적 탐구, 40대는 반추상, 50대는 추상화, 그 이후는 서예적 추상"이라고 되짚은 바 있다. 먹으로 그린 인간군상은 극도로 단순하지만 치밀하고 대담해 생동감이 넘친다. 서예적 추상화 뿐 아니라 천ㆍ종이ㆍ돌ㆍ금속판 등 소재를 달리해 남긴 작품들이 흥미롭다.


남관은 원시성이 스민 전통성에 관심을 가졌다. 한국적인 소재와 서구적 조형양식을 결합하려는 노력은 어쩌면 당시 화가들의 숙제와도 같았을 것이다. 가령 색동옷 입은 춤꾼들의 모습을 기하학적인 형태와 색으로 환원한 노력은 몬드리안이 형태를 색과 선만으로 바꿔버린 시도와 같은 맥락이다.

이번 전시에는 특히 한지에 수묵으로 그린 인물상이 눈길을 끈다. 먹을 찍고 흘리고 번지게 하여 표현한 풍만한 여인상부터 군상까지. 전후세대를 거친 작가는 "잔혹한 고비를 겪으면서도 악착같이 생을 이어나가려는 인간상"이라 했었다.

작가는 돌이나 고대의 유품, 탈, 암각화나 초기 상형문자의 흔적 등을 자기식으로 재해석해 마치 고대 유물이나 선인들의 자취처럼 화폭에 옮겼다.

둘의 닮은꼴과 다른 모습을 찬찬히 비교해 가며 어느 작가에 더 마음이 끌리는지 음미하면감상의 재미가 한층 더 난다. 전시는 5월10일까지. (02)720-1020
조상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