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5월3일 동아일보 5면에 실린 이일씨의 칼럼이다.


비존 정착(定着)에의 노력

남관씨 체불작품전(滯佛作品展開)

 

씨의 귀국을 다시 다짐하듯이 남관화백은 개인전으로 우리나라 미술계에 그 유례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의 작품전을 꾸몄다. 55년에서 68년까지 13년에 걸친 체불 기간 중의 작품을 추려 한 자리에 묶어 놓은 씨의 체불작품전이 바로 그것이다. 429일부터 66일까지 국립공보관, 그것은 곧 체불 13년의 결산전이요 일종의 회고전의 성격을 띠고 있는 전람회이기도 했다.

 

체불 초기의 다분히 전원적인 서정이 깔린 55년에서 귀국 직전의 푸른 고적」 「환상, 일련의 초시문(超時問)적인 심층(深層)의 심상(心象) 풍경에 이르는 56점의 작품을 통해서 우선 우리에게 주는 감명은 이 작가의 투철하고도 진지한 작가의 의식이다. 씨에게 있어 이른바 시세(時勢)는 그 아무런 위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오히려 씨는 자신의 내적인 소리, 명상과 투시로써 발효되는 비존의 정착에 씨의 노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씨의 작품은 시간 속에 매몰되지 않는, 그리고 시간의 부식(腐蝕)적인 힘에 견디어 낼 수 있는 굳건한 텍스추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견고하고, 그 자신이 독특한 생명을 지닌 듯이 미묘한 변신의 조화를 보여주는 마띠에르, 완전히 자기 것으로 익힌 개성의 수법, 그리고 시간과 기억과 환상이 서로 얽혀 정착과 유동(流動)의 변주(變奏)가 유현한 공간을 마련하여 무한(無限)으로 번져 간다.

 

씨의 회화세계와 조형언어는 이미 그 자체로써 완성의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제 앞으로 씨의 작품이 새로 어떠한 전개를 보일 것인지, 이 또한 우리의 큰 기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일(李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