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의 캔버스 세상] 사후에 만난 이응노·남관…갈등도 멋진 화음으로 승화[서울신문] 2009-04-28 19면  총20면  문화    1437자
우리는 동행이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동행하는 것이다. 여와 야도, 남과 북도 동행이다. 제아무리 다투고 비방하고 서로를 미워하더라도 결국 한 배를 탄 동행이다. 서로에게는 크게 달라 보이는 것이 길게 보면 미미한 차이에 불과하다. 동행의 지혜는 갈등을 갈등으로 남겨 놓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화음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긴장은 존재하되 그것이 파멸의 원인이 되도록 방치하는 게 아니라 창조와 행복의 이유가 되도록 승화시키는 것이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동행’ 전(5월10일까지)은 치열하게 경쟁하며 예술혼을 불태웠던 두 화가 사이의 긴장이 실은 멋진 화음이었음을 보여 주는 전시다. 예술이 위대한 것은 어떤 경쟁과 차이, 다툼도 끝내 아름다운 조화로 승화시킨다는 것이다.

‘동행’ 전의 주인공은 우리 근대 미술사의 위대한 두 대가 이응노와 남관이다. 두 화가는 1950년대 파리로 떠나기 전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 1955년 일곱 살 아래인 남관이 먼저 파리로 떠나자 이응노는 남관의 작품을 대신 팔아 송금해 주는 등 각별한 우정을 드러내 보였다. 그러나 1958년 이응노가 파리로 간 뒤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낯선 땅에서 작가의 길을 새로 개척해야 하다 보니 예술가 특유의 자존심과 경쟁심이 서로에 대한 오해를 부채질했던 것 같다.

두 사람 사이의 긴장은 1973년 이응노가 한 일간지에 ‘창작과 모방’이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정점에 이르렀다. 이 글에서 이응노는 자신의 ‘문자화’를 남관이 모방했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에 발끈한 남관은 같은 신문에 이를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글을 실었다. 어쨌든 이 사건 이후 두 사람은 완전히 멀어졌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두 대가의 부정은 영원할 수 없었다. 그들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그들은 이렇듯 한 전시장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추상 형식, 그것도 문자 추상 형식으로 20세기 후반의 우리 미술계를 이끌었던 대가들이기에 그들은 어디서든 늘 함께 거론되고 비교되며 칭송된다. 그들의 작품은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았다.

두 사람이 같은 문화권 출신으로 파리의 공기를 같이 호흡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문자 추상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함께 공유하게 된 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거친 비정형(非定形) 형식의 미술인 앵포르멜이 한창 활발했던 전후의 파리에서 한자와 같은 문자가 지닌 원초적인 추상성과 붓글씨가 지닌 필획의 에너지를 두 대가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동양의 뿌리를 드러내 주면서도 시대의 트렌드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조형 자산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같은 자산을 토대로 했으나 이응노는 군집성이 두드러져 울림을 중시하는 작품을 낳았고, 남관은 개별성이 두드러져 캐릭터를 중시하는 작품을 낳았다. 큰 차이라고 하면 아주 큰 차이다. 허나 오늘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볼수록 서로 조화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