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서 앙숙으로 바뀐 이응노 - 남관의 ‘동행’[경향신문] 2009-04-07 28면  총10면  문화    981자
한국 현대미술사의 대표적 추상작가인 이응노(1904~1989)와 남관(1911~1990).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였다가 모방 문제로 사이가 벌어졌다. 무엇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추상미술의 세계를 가꿔간 선구자들이었다. 두 사람의 작품 세계를 나란히 조명하는 2인전 ‘동행’이 지난 3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서로 닮은 듯 다른 두 작가의 문자추상과 군상, 드로잉, 소품 등 110여점이 선보인다. 남관과 이응노는 각각 1955년, 58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당시 유럽의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비정형회화)의 영향을 흡수한다. 이응노는 먼저 유학을 떠난 남관의 유학자금 마련을 위해 작품 판매를 중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73년 이응노가 일간지에 남관의 모방 의혹을 제기하고 남관이 이를 비난하면서 결별한다. 이런 배경에서 마련된 이번 전시는 당대 추상화의 보편적 경향과 함께 두 작가 간의 영향관계를 살펴보기에 적합하다.

이응노의 작품은 1970~80년대에 그린 군상과 문자추상, 그리고 유학 초기의 타피스트리 작업과 한지 콜라주가 출품됐다. 동양화 기법으로 그린 그의 군상은 개별적 인간을 그리면서도 전체적인 흐름이 통일된 역동성을 보임으로써 동양적 관념과 관조의 세계를 떠나 생동하는 인간, 역사 속의 인간을 그린 것으로 평가된다.

남관의 경우 80년대 후반에 그린 군상 드로잉이 처음 선보인다. 이응노의 힘있는 군상과 달리 남관의 군상은 에로틱한 느낌이 강하다. 생전의 그는 자신의 군상에 대해 “인간의 외형이 아니라 희로애락, 비애, 고독, 허무, 정 등 내면을 표상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70~80년대 문자추상과 프랑스 유학 시절의 엥포르멜 작품도 나왔다.

이진성 큐레이터는 “모방 문제를 둘러싼 두 사람의 불화 때문에 비슷한 시기에 작품 활동을 했으면서도 개별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강했다”며 “두 작가의 군상과 문자추상을 한자리에서 비교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윤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