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 논문·평론 · 21
미래의 고전 김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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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來의 古典
金 丘 庸
이 글을 쓰기 위해 전화를 건 것은 아니지만 몇 달 전에 귀국한 南寬화백을 몇해만에 만나보고자 전화를 걸었다.
『내일 오후3시쯤 놀러갈까합니다. 혹 일에 지장이나 없을지요』 『좀 큰 작품을 하는 중인데 화실이 따뜻하지 못한데다가 무리를 해서 건강도 좋지 못합니다. 1주일 뒤면 꽁뽀지숑이 정해질 듯하니 그때 함께 천천히 놉시다. 그 쪽 사정은 어떻습니까.』
1주일 뒤면 원고를 넘겨야 한다. 물론 이러한 원고청탁을 받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주에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우선 작품활동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하기야 만나지 않고 쓰는 편이 자유로울 것이다.
남관화백을 생각하면 생각나는 일이 더러 있다. 환도 뒤에 유일한 문예잡지가 창간된 지 몇 달이 지나서였다. 당시 기자였던 나는의논했다.
『다음 달 표지는 남관화백에게 부탁하면 어떻겠습니까』
某씨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림이야 좋지만 상품효과가 별로 없어요』
듣기에는 뭣할지 모르나 바꾸어 말하자면 다수에게는 어렵고 극소수만이 좋아할 작품이라는 뜻이니 남다른 일면을 지적한 대답이였다. 그러나 다수와 영합하려고 않는 태도를 고집으로 본다면 속단이다. 알고 보면 자기 세계만을 성실히 추구한데 지나지 않는 남관화백의 작품이 주는 저력이다. 그 점은 본인의 온화한 미소와 음성을 대하면 알 수가 있다. 근 30년 전에 본 남관화백은 그동안에 별난 데가 없다. 관찰방식만이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변화를 거듭하였다. 불변성不變性이 변모를, 조화造化를 이루어 놓은 것이다. 변할 때마다 자기 자신으로 다시 살아나 찾아낸 확인이었 다. 그래서 남관화백은 자기 자신의 모든 작품과 다르지 않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미술은 모른다. 안다면 자고로 시와 그림은 서로가 관심을 가져왔다는 정도이다. 다른 분야에 간섭할 자격은 없으나 무관심할 수도 없는 사이다. 현황과 전망에서 당면한 예술과제는 함께 유의하도록 되어 있다. 더구나 경쟁의 성공과 실패가 격심한 시기에는 안이한 타협이 유혹하는 작품을 걸작으로 착각하는 수가 있다. 반대로 주기 위한 진실이 외면 당했을 때가 소재素材인 것이다. 이러한 계기는 의식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흔히 허공에서 유리遊離하지마는 발상이 형상形象으로 창조되기에는 허다한 시련을 겪게 마련이다.
남관화백의 경력에는 이러한 상대적 명제가 극명하게 다루어져 있다. 그러한 경우 대결적 난해성은 진실해서 작품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탈락脫落은 조화로서 지향指向하겠지만 그러나 물질과 정신은 인간에서만 하나였다. 그러므로 만남은 늘 증명證明의 편이었다. 가치가 예술을 애호하지 않는 한 생명은 황폐했다. 난제難題란 그러한 본보기에 불과했다. 똑같은 물건은 널리 사용되어야만 했다. 개성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영향을주었다. 어떠한 형태이든 간에 생명화生命化를 위한 원칙은 서 있었다. 따라서 반응은 가능의 모태母胎였던 것이다. 기교의 함정은 있어도 표현을 무시한 과정은 없었다. 모방은 금기禁忌로되 표현은 주어진 특권이기 때문이다. 착상이 시효時效적이 거나 명성인 줄로 안다면 작품은 스스로를 구제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화가란 어려운 색감色感임을 남관화백은 일방적으로 통고했다. 단절이 무진장한 자원임을 알기도 한다. 그래서 단절을 치료하는 자세를 택한 것이다. 이러한 순화純化작용은 비정非情을 위로했다. 때로는 파열과 침체로서 힘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나처럼 문외한에게는 남관화백은 미래의 원초적인 고전古典으로 느껴지는 때가 더러 있다.
임시수도 부산 피난 때였다. 남관화백의 그림과 글을 잡지에 싣기로 했다. 받아낼 수 있을지가 염려였다. 함부로 그리지 않는 성격을 알기 때문이었다. 졸라보는 수밖에 없다는 속셈으로 교섭 했는데 뜻밖이였다.
『마감날짜가 며칠입니까.』가 첫 대답이었다. 그 뒤 게재지와 화고료를 드렸더니 이번에는 남관화백이 뜻밖이었는지 대답 아닌 걱정을 했다.
『거기도 넉넉지 못할텐데 고료를 많이 줍니까』
이와는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수화樹話화백의 그림과 글은 곧 받아낼 줄로 알았다. 받아 가는 기자들을 몇 번인가 보았기 때문인데 뜻밖이었다.
『그런 형편없는 잡지에는 안 그려요』
수화화백은 솔직호방한 웃음을 웃었다. 조르지도 못한 채 거절만 당했다. 두 분을 잘 아는 문인들일지라도 그럴 리가 없는데 하고 의아해할 것이다. 미술을 논하는 수화화백과 작품을 말하지 않는 남관화백의 태도는 내 나름대로 두 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왜 이러한 묵은 얘기를 하는가 하면 남관화백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비사교적인 점을 고집으로,탐구정신을 오만으로 짐작하기는 쉽다. 외국에서의 고행苦行이 없었다면 남관화백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을까. 국내에서 계속 사궐 수 있었다면 더 빨리 이해했을까. 떠나기 전이나 돌아온 후나 인간 남관화백은 변한 데가 없다. 어디에서나 언제나 작품생활이 생명이었다. 문단과는 친한 사이로되 글을 쓰는 것도 삼가한다. 이론에는 시대적 구분이 있겠지만 늘 심정心情에 민감했다. 전자제품이 겸제謙齊를 무시한다면 세상은 삭막할 것이다. 외국에서의 오랜 각고刻苦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분노와 절망과 탐구와 혼란과 영감과 좌절이 때로는 꾸밈 없이 압축되었다. 그러한 어두움과 아픔에서 원숙한 빛이 탄생 했을 것이다. 불변과 변화는 어떠한 연결인가. 그 대답으로서 남관화백의 정체正体가 드러나고는 한다. 그러나 그 정체는 곧 모호해지며 때로는 사라진다. 방법과 설정에 관한 自己否定이 그러한 것이다. 부정을 부정하는 구극의 발견은 무엇일까.
몇 해 전이었다. 화실인지,작품들만 두는 창고인지,야릇한 건물로 따라 들어간 적이 있었다. 하 허름하고 어수선해서 직품들만 있다면 곧 나왔을 것이다. 남관화백은 유화 한 폭을 보여 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작품 자체는 나의 대답을 거부하고 있었다. 남관화백 작품으로는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였다. 세심한 친화력親和力,확고한 추구,승화된 성실,비현실의 체취마저 없었다. 없는 것을 정확히 바로 표현한 내용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누구를 떠보려는 속셈인가. 그리다가 버린 것인가. 아니면 기본을 포기한 것인가 하고 곡해했을 것이다. 미술 이전이나 미술 이후의 작가가 있다면 이러한 작푸일까 하고 생각했다. 남관화백은 근 30 년 전에 내가 처음으로 보았던 그 부드러운 미소를 미소했다. 누구나 아는 형상과 색채로는 미美의 본질을 모른다는 자기만의 만족 같기도 했다. 원시와 동심童心마저 버린 차원이었다. 대담하게 끊어 버린 자각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나로서는 잡히는 데가 없어서 이끌렸다. 어느 모로 보아도 남관화백은 서양화가가 아니었다. 역시 동양화가였다. 특히 한국의 화가임이 분명했다. 세계에서 단 한 사람 밖에 없는 남관화백이였다. 서구생활에서 무슨 이론을 터득 했는지는 모른다. 이질적인 외국 작품들에서 느끼는 이해理解와는 다른 공감을 우리에게 준다. 정신 세계는 선진과 후진이 있었다. 도리어 반대일 수도 있었다.
외국에 다시 가 전시한 작품들을 보지는 못했으나 그리고 몇 달 전에 귀국한 남관화백을 아직 만나지는 못했으나 전화로 부드러운 목소리만 들어도 온화한 미소가 보이는 듯했다. 그 면모는 칭찬하 거나 비난하거나 간에 확실한 신념이였다. 화가로서 자기 세계를 이해시키려는 사명의 순례巡禮였을 것이다. 그러나 감동을 잃은 생명을 감동시키기란 지난한 노릇이다. 무엇인지 두리 뭉수리가 된 원 점에서 어떠한 태도를 취하느냐는 모색은 책임을 요한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미세한 점도 본다. 그러나 이해만으로는 작품이 되지 않는다. 활력소를 주어야만 존재가치가 성립하는 것이다. 하늘을 날으는 시간만으로 해소될까. 목적은 대지에서 만나는 일이었다. 아름다움 없이는 살기 어려운 시간이였다. 없을수록 감동하려는 목마름은 더 했다.
자기자신을 구제하려는 노력이 남을 돕는 근원이었다. 그의 노고를 위로함은 귀중한 매력에 감사하는 일이다.
마침내 작품 체질体質이 귀중하다는 증명을 제시한 것이다. 거시적巨規的인 빛은 새로와만 간다. 한국 미술사에서 남관화백이 어떠한 위치인가는 후세後世가 지적할 것이다. (1979)
〈성균관대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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