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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재불 한국작가의 작품 세계 | 주간경향 | 201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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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965호

[문화내시경]1세대 재불 한국작가의 작품 세계

서울 최초의 서양화 전시회를 연 화가 나혜석(1896~1946)이 1927년 파리를 다녀온 이후, 일군의

한국 화가들이 1950년대 다시 이곳을 찾았다. 오늘날 한국 현대화의 대가들로 꼽히는 김환기, 권옥

연, 남관, 이성자, 손동진, 이세득이다. 서울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약 9000㎞. 이들이 이 먼 길을 떠

난 이유는 무엇일까. 14년간 파리에 머문 남관(1911~1990)의 말을 들어보자. “그것은 서양미술을

직접 보고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서양의 것을 단순히 카피하는 것이 아

니라, 그것을 하나의 인스피레이션의 원천으로 삼고 또 하나의 윤리적, 지적, 정신적 변혁의 계기로

삼는다는 데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에콜 드 파리’로 불리는 그들은 유럽

의 서정적 추상운동을 직접 경험하면서 이를

토대로 한국적 주제와 전통성이 녹아든 독자

적인 추상미술의 세계를 열었다. 원래 ‘에콜

드 파리’는 마크 샤갈, 파블로 피카소, 모딜리

아니처럼 20세기 초 유럽에서 자연주의와 고

전주의에 대항한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의 중심

에 있던 예술가들을 총칭하는 말로 쓰였다.

서울 충무로 신세계갤러리에서 3월 19일까지

열리는 ‘1958 에콜 드 파리’ 전시는 이들 6인

의 1세대 재불(在佛) 한국 작가들이 공통으로

머물던 시기인 1958년을 전후로 당시의 작품

과 자료들을 한데 모았다. 한국 현대미술을 정

착시킨 대가들의 파리 시절 작품세계를 비교

하며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로, 한국전쟁

의 비극을 딛고 이들이 꿈꾼 새로운 이상 세계

를 회화작품으로 접할 수 있다.

이세득, 파리 아틀리에의 작품 <념> 앞에서.

권옥연(1923~2011)은 1956년 파리에 도착한

이후 화풍의 변화를 보였다. 평면적인 이미지로 된 풍경과 인물 작업에서 추상적인 실험작업으로

전환한다. 정형화된 추상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앙포르멜 미술의 영향을 받은 서정적 추상양식을

선보인다. 1960년 작품 <추상>에서 비정형의 형태와 두툼한 질감, 청회색의 절제된 색채 등에서 앙

포르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에콜 드 파리’의 중심지였던 파리 몽파르나스에 화실을 마련한 남관

도 앙포르멜 추상화를 그렸는데, 그의 파리 생활 초기작인 <시장>은 파리 생활의 고독과 외로움이

신비스런 형체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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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1913∼1974)는 파리에서 달, 백자, 산, 학, 매화 등 한국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 서정적 추상

화를 그렸다. 파리 개인전에 출품된 <항아리> <영원의 노래> <산호선을 날으는 섬> 등은 회화로

표현된 ‘시’로 불릴 만큼 고도로 절제된 조형요소로 문학적인 리듬과 운율을 느끼게 한다. 그는 이

후 1965년 51살의 나이에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부상한 뉴욕에 건너가 서정성이 강한 독창적 추상

양식인 점묘 시리즈를 발표하며 세계적인 추상화가로 인정을 받게 된다.

손동진(80)은 파리에 도착해 오히려 서구 근

대미술에 대한 일방적인 추종을 반성하고 한

국적 전통과 고전의 가치를 재발견했다. 그는

신라금관과 탈춤, 석굴암 등 전통 소재를 서구

적 표현양식을 사용해 새롭게 표현했다. 이세

득(1921~2001)은 한국에서 체험하지 못한 새

로운 그림세계를 접한 충격에 10개월간 붓을

들지 못했다. 그는 이후 “나만의 그림세계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그린 후 화랑을 돌아보다 거

의 비슷한 그림들이 있으면 미련 없이 그 그림

김환기 <새> 1961, 캔버스에 유채, 60×90㎝

을 버려버렸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만의 그림

세계 구축에 매진했다. 자연에서 출발한 그의 그림은 입체주의 회화의 오브제 파괴과정을 거치며

서정적 추상표현으로 발전한다. 밝은 색채의 구상화인 <하오의 테라스>에서 서정적 추상화인 <념>

으로의 변화는 이 과정을 잘 보여준다.

조형적 실험을 거듭한 한국의 ‘에콜 드 파리’ 거장들은 대체로 서양미술의 논리는 받아들이되 한국

인이라는 태생적인 문화적 배경을 살리고자 했다. 서양미술과 동양미술의 융합을 시도한 이들 작가

의 노력으로 한국 현대미술은 독자성을 갖출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들 작가의 작품세계를

현장감 있고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작가들과 관련된 각종 인쇄출판물, 언론기사, 사진자료

도 전시된다.

<주영재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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