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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 남관 화백님 별세 관련 기사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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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1
[국민일보]1990-03-31 18면 264자 사회
원로화가 남관씨 별세
국내 화단의 대표적 원로 추상화가 남관씨가 30일 새벽1시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향년79세.남화백은 동ᆞ서양을 오가는 독창적 조형세계를 구축한 화가로 58년 한국화가로는 최초로 프랑스의 살롱 드 메전에 초대됐으며 66년프랑스 망통비엔날레에서는 타피에스ᆞ폴리아코프등 세계적 거장들을 따돌리고 대상을 수상하는등 국제적 화가로 명성이 높았다.
유족으로는 외아들 남윤씨(39.조각가)가 있다. 발인은 4월1일 오전10시 신촌세브란스병원 영안실(312-2241)
[서울신문]1990-03-31 14면 594자 사회
원로 서양화가 남 관씨 별세
우리나라 추상회화의 선구자이자 화단의 원로인 남관화백이 30일 상오11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남화백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상형문자와 같은 독특한 형상으로 표현,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얻었던 우리화단의 대가.
경북 청송에서 태어난 남화백은 37년 일본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한후 55년 처음으로 도불,본격적인 그림수업을 쌓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몇년간 작품생활 끝에 58년 한국화가중 최초로 살롱 드 메전에 초대됐고 66년 프랑스의 망통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차지,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현재 그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센터ᆞ파리시립미술관ᆞ룩셈부르크 국립박물관 등에 소장되어있다.
남화백은 전쟁이라는 비극을 체험한데서 비롯된 인간상의 본질적 공허감에 집착하는 가운데 진실의 영원성을 정제된 색채에 담아왔다.
68년 귀국한 그는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인간의 내면세계에 치중,70년 이후엔 비극적 체험을 우주의 새로운 질서로 표출하는 중국의 상형문자와 비슷한 화법을 구사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유족으로 외아들 남윤씨(39ᆞ조각가)가 있다.
발인은 4월1일 상오10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영안실. 연락처 3122241
[세계일보]1990-03-31 14면 246자 사회
추상화단 원로 남관화백 별세
국내 추상화단을 이끌어 온 화가 남관씨가 30일 새벽1시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79세.경북 청송태생인 남화백은 37년 일본 동경의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55년 프랑스로 건너가 그림수업을 쌓았다. 특히 그는 66년 프랑스의 망통비엔날레에서 피카소 아르날 타피에스등 세게적 거장들을 물리치고 대상을 수상,국제적으로도 명성을 높였다.
발인은 4월1일 오전10시 신촌세브란스병원 영안실. 312-2241<관련기사8면>
[세계일보]1990-03-31 08면 1218자
한국미술사에 커다란 족적/타계한 원로화가 남관화백의 일생
◎우리 현대미술 개척한 세계적 작가/개인전만도 23번... 수많은 수상경력/하루 10시간 작업... 작품량에서도 모범보여30일 원로 서양화가 남관화백의 타계는 지난해 돌아간,고암 이응로화백과 함께 한국근현대화단의 또 하나의 별이 사라진 셈이다.
남관화백은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중국의 「자우끼」(조무극) 일본의 스가이(관정급)와 함께 현대미술계의 세계적 동양작가로 꼽혔다.
특히 그의 신화는 66년 남불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 피카소 뷔페아르날 타피에스 등 세계적 거장을 물리치고 1등상을 받은 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일본 동경 태평양미술학교를 나온 그의 미술세계가 무르익기 시작한것은 6ᆞ25의 전쟁 체험후 프랑스 파리 아카데미드라 그랑드쇼미에르(55∼58년)에서 수업하면서 비롯된다.
한국화가로선 처음으로 지난 58년 살롱 드 메에 초대되었으며 66년 문제의 프랑스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그는 68년 파리생활을 청산,귀국한후 줄곧 한국에 머물면서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상형문자」작업을 최근까지 추구했다.
매우 표현적이면서도 추상적인 문자작업은 「서양화에 동양적 미관을 접목시킨 경지」로 평가되고 있다.
파리 도쿄 룩셈부르크 함부르크 브뤼셀 등 국내외에서 가진 23번의 개인전과 수많은 초대전,7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81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훈 등은 그의 명성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또 그의 작품은 파리 국립미술관 파리시립미술관 룩셈부르크 국립미술관 토리노국제미술관 프랑스문화부 로잔이 공과대학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일본미술관소장 조건으로 진화랑이 제1회 도쿄 아트엑스포에 출품전시중(3월29∼4월2일)타계한 것이다.
81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8월18∼23일)때는 2백35점을 출품,초기작인 구상계열의 「호박」(45년) 「마음에 비치는 일그러진 상」(81년) 등 구상추상의 변모와 「화력50년」을 한꺼번에 보여주기도 했다.
하루평균 10시간의 고된 작업으로 작품량에 있어서도 모범을 보였던 그는 그의 명성탓인지 지난 86년 작품20점을 국제사기 당하는가 하면 87년에는 예화랑 전시중 12점을 도둑맞기도 했다.
마음을 그리기때문에 「내 그림은 추상이 아니라 마음속에 보이는사실화」라고 주장하기도 한 남관. 지난 81년 고희전때 『샤갈이 올해로 아흔 네살이고 피카소도 아흔 두살에 죽었지만 죽을때까지 화필을 놓지않겠다』고 다짐하던 그도 한국미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마음의 세계」로 영원히 갔다.<박정진기자>
[한겨레]1990-03-31 10면 124자 사회
서양화가 남관씨 별세
서양화단의 원로 남관 화백이 30일 오전1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에서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발인은 4월1일 오전5시30분. 장지는 경북 청송군 두남면 화장동 무듬실골 선산. 3122241.<관련기사 7면>
[한겨레]1990-03-31 07면 846자
타계한 남관화백 생애와 작품세계/파리서 인정한 앵포르멜 대가
◎한글 소재 인물추상으로 발전30일 타계한 남관 화백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프랑스화단에도 잘 알려진 앵포르멜회화의 대가.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1935년 도쿄의 다이헤이요 미술학교를 졸업한 그는 일본에서 동광회ᆞ문전 등에 출품하면서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 서울로 돌아왔다가 1955년에 프랑스로 건너가 68년까지 장기체류했고,귀국하여 68년부터 77년까지 홍익대 교수를 지냈다.
그는 프랑스에서 살롱 드 메와 다른 여러 단체전에 출품했고 66년에는 망통 비엔날레에서 <태양에 비친 허물어진 고적>으로 피카소,타피에스 등 거장들을 물리치고 대상을 받았다. 파리에서 이름을 날린 작가답게 그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센터,파리 시립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다.
74년에는 한국문화예술상,81년에는 문화훈장을 받았다.
세잔느 풍의 후기인상주의로 시작한 그의 화풍은 파리 체류이후에는 입체주의와 인상주의를 포함해 서정추상주의에 도달했고 그 뒤에는 한글이나 한자를 모티프로 한 추상이나 피에로를 주제로 한 인물추상으로 발전했다.
한국전쟁의 비참함이나 옛문화적 유물들을 연상시키는 그의 어두운 회색조의 화면은 우연적이면서도 세련된 얼룩들로 점철돼 타시슴(얼룩주의)이라는 이름표를 부여받기도 했다.
남화백은 86년 영국 테이트갤러리 초대전을 빙자한 국제사기극에 휘말리기도 했고,그 이듬해엔 예화랑 전시회 도중 작품 12점을 도난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는 88년 9월 갤러리 현대에서 대작30여점으로 그의 마지막 개인전이 된 전시회를 가졌다. 또 4월2일까지 도쿄 하루미 국제무역박람회장에서 열리는 제1회 도로아트엑스포에,진화랑의 출품작가로 선정돼 작품을 전시중이었다.
유족으로는 도조작가인 외아들 남윤(38)씨가 있다.
[한국일보]1990-03-31 18면 139자 사회
추상화 대가 남관화백
우리나라 추상화의 대가인 남관화백이 30일 상오1시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지병인 신부전증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관련기사 11면
유족으론 외아들 남윤씨(39ᆞ조각가)가 있다. 발인은 4월1일 상오10시 신촌세브란스병원 영안실. 312∼2241
[동아일보]1990-03-30 18면 620자 사회
원로서양화가 남관옹 별세/태양 달등 생명력있는 소재 즐겨 그려
원로 서양화가 남관씨가 30일 새벽1시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79세.남화백은 경북 청송출신으로 37년 일본 동경의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한후 54년 프랑스로 건너가 14년동안 활동하며 국제적으로 이정받았다.
그는 58년 한국화가로는 처음으로 살롱 드 메전에 초대된 것을 비롯,84년 FIAC(국제현대미술박람회) 84전 등 유럽에서 여러차례 개인전 및 초대전을 가졌다.
남화백은 68년 귀국한 뒤에는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였다. 그는 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상형문자와 같은 형상을 통해 표현했으며 해 달 고성 등 영원한 생명을 지닌 것들을 작품소재로 즐겨썼다.
남화백은 86년 국제사기극에 휘말려 한때 작품 20점이 중발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작품활동과 함께 국전서양화 심사위원장 홍익대교수 한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예술원회원을 지냈으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현재 고인의 작품은 일본 동경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에 22점이 출품돼 전시중인데 외아들 남윤씨(38ᆞ도예작가)는 『지난 4일까지 출품작을 제작하느라 무리,6일 입원했으나 회복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발인은 4월1일 오전10시(예정)이고 장지는 아직 미정이다. 연락처 3122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