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예술 · 일본유학에서 도불전까지 ·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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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회화연구소 (경향신문 / 1947.09.12.)

화백 이쾌대 남관 이인성 등 전부 七씨를 지도교사로 하여 서울 돈암동 458-1에 성북회화연구소를 설치하였는데 연구부문 은유화 수채 「파스□□」이라 하며 입소자격은 학교출신 유무를 불관하고 소질에 치중하리라 한다.

남관미술연구소 (조선일보 1948.7.21.)

흑석동 산 10-14 자택화실을 개방하여 8월3일 미술연구소를 열었다.

연구과목은 석고, 유화, 수채화이며 매주 월수토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지도

(창림미술연구소 동거인 김영기가 임대차계약 이외 부분인 화실 밑을 파고 직조기를 불법설치하여 동적산가옥 전체가 진동하여 국무총리와 문교장관에게 진정서 제출 “ 동아일보1949.4.28.)

홍익대 미술과 신설 (동아일보 1949.6.11.)

용산구 문배동에 있는 홍익대학에서 미술과를 신설하여 학생 모집

미술과 담당 교수 : 동양화과 – 이상범, 김용준 서양화과 - 배운성, 남관

소설 해방 삽화 (동아일보 1949.7.12.)

김동리 장편소설 「解放」남관 삽화

1949.9.1.(1회) ~ 1950.2.16.(156회)

전시미술전람회(대한미술협회 주최 / 1951.9.17 외교구락부에서 개최 / 서양화 42점 출품)

(동아일보 1951.9.21. 기사)

서양화부 국무총리상 남관「가을」문교부장관상 김환기「太陽」

1953.10월 동경화단 시찰차 일본 행

1954.3.26. 남관 귀국 인사차 조선일보 방문

송정훈은 1956년 남관 김흥수와 함게 루브르박물관을 보고 정거장 뒤 중국집을 찾아 두부탕에 고추를 넣고 잡채 안주에 홍포도주를 마시며 현대파리화단의 비형상파와 형상파의 대립되는 논쟁을 벌이다가 밤늦게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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