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관화백 · 남긴 글 · 21

남관 화가의일기 화랑1984

자료 형태
보유 원문 · HWP
복구 판정
원문 전체 복구
첨부파일
남관_화가의일기_화랑1984.hwp
자료 출처
사용자 제공 원본 파일

복구된 원문

畵家의 日記/南寬

서울畵室•파리 畵室

이곳 부암동 높은 지대로 이사를 온것이 68년 파리에서 돌아온 후니까 벌써 10여년을 넘는 셈이다. 오른 쪽으로는 북악, 왼쪽으로는 북한산이 보이고 그러고 집이 들어 앉은 곳은 仁王山기슭이 되는 셈이다. 지대가 높아서 여러모로 보이는 전망이 좋다.

처음 장만한 집을 수리하고,몇해안에 허름한 옆집이 나서, 화실로 쓰기 위해 좀 무리를 해가며 샀다. 창고처럼 덩그런 공간이 나의 작업실이다.

가난한 동네를 달동네라고 한다는데, 누군가가, 이 동네가 바로 달동네라고 했다. 나는 아주 그 말이 듣기가 좋다. 전망이 좋아서 이 집을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서울에서 이만한 전망은 좀처럼 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추운 화실 생각하면 이사도 가고 싶지만 ...

지금까지 그래서 눌러 살았다.

그린벨트 지역이라,마음대로 집을 고치기도 힘들다.

창고와 같은 나의 화실은 난방이 잘 안된다. 거울이면 난로를 땠는데,항상 써늘하다. 훈훈하고 넓고 좋은 화실이 간절할 때가 많다.

11월6일부터 30일까지, 중앙일보의 중앙갤러리 개관 기념으로 초대전을 갖게 되었다. 1~2 층에 걸쳐 60여점을 전시하게 된다. 그 일 때문에 사진기자들이 찾아와 하루 종일 사진을 찍느라 법석을 떨었다.

어느덧 나이 80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속으로 늙었다고 생각해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렇게 살아왔다.

그랬는데,요즈음 중앙 갤러리 전시회 출품 작품들을 위해,작업을 좀 강행했더니,몸이 말을 안 듣는다. 한창 작업을 할 때에는 힘들다는 것을 잊곤 한다. 일손을 놓고 밥을 먹으러 나오든지 하면 그것을 느낀다.

잠을 많이 자지 못한다. 하루 3시간 이상 못잔다.

지난 여름 수해 때,낙상을 해서 발을 조금 다쳤다. 때 없이 작품 생각을 하다보면 정신은 항상 딴 곳에 가 있을 때가 많다. 바로 집앞에 맨홀을 수리하다가 둔 곳이 있는데, 무심코 지나다가 거기에 걸려 넘어졌다.

건강에는 꽤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맨홀에 절려 넘어지며 다친 다음 부터는 신경을 쓰게 된다. 현대작가들은 건강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작품을 하는 일은 노동과도 같은 것이다.

낙상이, 나로서는 새삼스럽게 건강에 신경을 쓰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그 자체가 슬프고 고독한 일이다. 남들은 화려하게 볼는지 몰라도 작가는 그런 슬픔이나 고독을 무릅쓰고 이겨나가야 된다. 그러나 이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사람이 늙으면 편하고 싶고,거기다가 물욕까지 생기게 된다. 더구나 한국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편하려고만 하는 것이 아닌가. 나이가 들수록 더 책임있는 작품을 해야 할텐데......

늙으면서 더욱 작품 활동이 활발하고 작품을 위한 고통을 몸소 사서 생활한 외국의 작가들을 생각한다.

르느와르,세잔느,피카소,브라크 등......, 한번 다시 보고,두번 다시 보고 열번이라도 고쳐가며,또 다시 그려가며,완전한 작품을 지향했다. 샤갈의 경우는 좀 달랐지만 그는 웬만한 작품이라도 유태인들이 모두 사가니까, 비교적 편한 작가생활을 한 편이었다.

나나 남을 말할 것 없이,좀 더 고통을 느끼면서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 작가가,어느 정도의 업적이 쌓이고, 이름을 얻게 되면 상식적이고 통속된 세계로 빠져들 수가 있다. 그런 것이 나 자신에게도 항상 불만의 요인으로서 다가온다.

지금, 내 나이가 50이라면, 외국에 나가서 한바탕, 새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80이 가까와도, 그런 욕망은 항상 새롭다. 그런 욕망은 정신적인 지주가 되므로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이런 욕망은 부질없는 물욕과는 다르다. 욕망은 의욕을 낳고, 의욕은 곧 작품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므로 욕망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또한 많다. 욕망과 물욕은 때로 선명하게 갈라지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흙탕물과 맑은 물이 섞이듯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나아가서 인간의 예술행위는,크게 문화 전반을 생각한다면 그중의 아주 조그마한 일부분이다. 그 조그만 일부분인 예술이 왜 중요하냐, 그것은 예술이 인간정신의 지주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화폐가치는 한국보다도 낮다. 그러나 프랑스는 선진국에 든다. 그것은 그들의 예술의 선진성 때문이다 예술의 역사, 그 전통이 뚜렷이 이어져 현대에 꽃피며 살아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술·문화의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의 그것이 현대까지 잘 이어지며 꽃피지 못했다. 그래서 「전통의 단절」이라는 말이

나온다.

전통은 이어지되, 뿌리로, 속으로 이어져야 한다. 정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뿌리가 없이,속이 비고, 정신은 빠져버린 채 형식만 강조되면, 그런 전통의 계승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올바른 예술문화의 발전은 그렇게 새로운 전통의 창조로써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런 예술의 발전, 정신의 발전 없이는 국가가 절대로 발전할 수 없다.

10월 9일, 또 파리로 간다. 때마침 FIAC( 세계화랑 협회 전시회)에 珍화랑이 작품을 가지고 참가하게 된다. 나의 작품도 출품은 되지만 나는 그 일 때문에 가는 것은 아니고, 간 김에 도울 일이 있으면 도울까도 한다.

나는 파리에 있는 畵商과 계약이 돼 있어, 잠깐 다니러 간다. 중앙 갤러리 전시회 떼문에 11월 3일 전에는 돌아와야 한다.

FIAC은 「현대미술작품국제박람회」라고도 할만큼 전세계의 화랑들이 모여서 전시를 하고 작품을 파는, 그런 행사를 벌이는 건데 한국에서도 차차 더 활발하게 참가했으면 한다.

그러나 대체로 유럽에서, 서양인들은 동양작가가 아무리 좋은 작품을 해도 무시하려고 한다. 그런 텃세가 강하다. 日本은, 경제대국이라, 정책적으로라도 조금 대우해 주는 편이다.

파리 정부나, 미국 등에서도 日本작가의 작품은 대체로 대만보다 훨씬 나은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그것도 서양인에 비하면 차이가 난다.

한국작가 중에는 日本작가보다 우수한 이들도 많다. 그러나 그들에 비해서 진출은 늦는다. 정치·경제·국가적 배경이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예술이라는 것이 하나의 마약이다. 몸이 아프고 배가 고파도 일단 화실에만 들어가 있으면 잊게 된다, 그림에 몰두하다 보면 모든 것을 잊는다.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 이것은 마술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보는 사람들, 즉 그림의 관객은 마술사의 마술에 걸리게 된다.

좋아하는 일은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낼수 있다. 일을 하는 순간 순간, 그 일의 즐거움이 샘솟는다. 그것은 좋아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희열이다. 그런 희열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안생은 행복하다.

인생이란 원래 속아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속이는 것보다는 속는 것이 좋다. 평소 이런 자위를 해가면서 살아나간다.

예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속아 사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술의 문제는 죽을 때까지도 해결이 안된다. 해결이 안되는 문제를 일생을 두고 쫓아간다는 것 자체가 속아 사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작가는 그것을 계속 한다. 그것은 자유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하고 싶은 방법으로써 하는 자유이다.

파리에 있으면 서울이 그리워진다. 그러므로 환상적인 작품이 나온다. 달을 보며 서 울을 생각하는 일이 많았다. 처음 파리에 갔을 때는 참으로 고생을 했다. 1955년에 나의 파리 생활은 시작되었다. 세든 집은 얼마나 싸구려 집이었는지, 겨울날 아침에 벽에 손을 대보면 물이 주르르 흘렀다. 침대 맡에도 물이 괴어 있었다. 파

리의 겨울은 비가 잘 온다. 그 집은 한국의 달동네 같은 그런 집이었다,

너무나 생활이 비참해서, 모처럼 나를 찾아오는 한국인들을 아무도 안 만났다. 한국에서 대학 교수(弘益大)까지 하고, 이름도 꽤 알려진 나의 거지와 같은 생활을 보여 주기가 싫었다.

아마, 그 당시, 나를 찾아왔다가 못 만나고 간 이들이 많은 오해를 했을 것이다.

그때, 그 집 옆방에 노동자 부부가 살았는데,그들의 기침소리까지가 다 들렸다. 지하철 청소부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야페(커피의 일종)를 꼭 마셨다. 나는 그 찻잔 소리에 「다섯시구나」하고 느낀다. 6시면 그들은 출근을 한다. 나는 그때부터 잔다. 나의 불면증은 그때 생겼다.

그동안 겨울이 되면 서울을 떠났다. 서울의 화실이, 너무 추워서 작업을 못한다. 지금 쓰는 파리 작업실은 66년도 프랑스 정부에서 준건데 창고같지만 난방이 잘되어 있어 작업에 열중할 수 있다. 또 파리에서는 겨울에 좋은 전시회가 많아서 많이 볼 수 있다. 겨울이 지냐고 2~3월에 한국에 온다. 그때부터 또 그림에 열중한다.

이것이 매년 반복된다.

왼쪽팔이 10년전부터 아픈데 따뜻하면 괜찮다. 돈이 있으면 남불에 화실을 갖고 싶다. 파리는 겨울에 습기가 많고 비가 많이 오지만, 실내가 서울보다 따뜻하므로 지낼만 하다. 음식이 곤란할 때가 있으나 한국식당에는 별로 안간다. 맵고 짜서 신장에 안 좋다. 또 그날, 그날 해야 할 작업량이 있는데 한국식당가서 아는 사람 만나 차 마시고 얘기 조금하면 그날 하루는 공친다, 그러고 내 나이 또래의 아는 이도 없다.

보유 원본 자료에서 확인·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