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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 파리서 피어난 한국의 추상미술 | 세계일보 | 201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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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전 파리서 피어난 한국의 추상미술 <세계일보>

1세대 재불화가 조망전 ‘1958, 에콜 드 파리’: 권옥연·김환기·남관·손동진·이성자

·이세득

1차 대전 후 1920년대 후반의 프랑스 파리는 세계의 물질적 풍요가 모이는 중심점이자 문화

적 수도였다. 이 시기 파리의 몽파르나스를 중심으로 모인 외국인 화가들을 가리켜 ‘에콜 드

파리’라 했다. 대표적 화가들로는 모딜리아니(이탈리아), 파스킨(불가리아), 샤갈(러시아), 키

슬링(폴란드), 수틴(리투아니아), 민싱(우크라이나) 등을 꼽을 수 있다. 한국작가 배운성과 나

혜석도 여기에 가세했다. 일제 강점기라 보다 많은 한국작가들이 프랑스 땅을 밟지 못했다.

한국전쟁 후 1950년대 중후반에서야 비로서 다수의 한국작가들이 파리에 입성하게 된다.

1958년에 프랑스에 머물며 한국적 추상미술을 열어나간 권옥연, 김환기, 남관, 손동진, 이성

자, 이세득 등이 그들이다. 통칭 1세대 재불(在佛)작가들로 불리는 이들이다.

신세계갤러리에서 3월 19일까지 열리

는 ‘1958-Ecole de Paris’전은 1세대

재불 작가들의 작품을 일별해 볼 수 있

는 자리다. 국내 보도자료와 편지 등도

전시된다. 1958년을 수평적 기점으로

잘라 살펴보는 한국미술사라 할 수 있

다. 수직적으로 미술사를 살펴보는 것에

서 탈피했다는 점에서도 신선한 기획이

다. 백화점 갤러리에서는 보기 드문 전

시다. 이번 전시에서 굳이 아쉽다면 김

흥수, 이응로, 한묵 작가가 빠진 점이다.

1세대 재불 화가들은 한국 현대미술 정

착기를 풍미한 대가들이라 할 수 있다.

유럽의 서정적 추상운동의 경향을 직접

경험하면서 한국 미술이 유럽과 세계로

건너가는 데 다리가 되었다. 전쟁의 비

극을 넘어서 만난 꿈의 세계에서 작가들

은 어떤 꿈을 꾸었고 현대미술의 용광로

에서 자신을 어떻게 추슬렀는지 살펴보

이세득의 ‘하오의 테라스’ 는 것이 전시 관람 포인트다. 1958년도

유럽미술은 10여년 전에 끝난 2차 대전

의 악몽에서 벗어나 후기자본주의의 맹렬한 팽창을 따라 멀리 넓게 펼쳐져 나갔던 시기였다.

가장 처절한 인간적 비극을 목격하고 가장 비참한 문화적 궁핍을 경험한 한국작가들에게 파

리는 예술적 자유와 문화적 풍요가 넘치는 천국이었다. 갈증과 열망은 비례해서 컸다. 이런

환경에 작가들은 한국미술에 깊고 큰 영향을 끼치는 변곡점을 만들었다. 당시 국내에서도 해

외미술이 핫이슈였다.

파리 한국작가들은 세계 미술계를 풍미하던 주류적 경향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고 예술의 아

방가르드적 태도와 이념을 수용하면서도 한국적 주제나 미의식, 전통성, 서정성이 녹아 든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1920년대 후반 동구권 등에서 온 ‘에콜 드 파리’들도

거의가 유대인이었지만 자신들이 태어난 나라의 예술전통에 충실했다. 같은 시기 프랑스화

단의 주조를 이루었던 입체파 화가들과는 친근한 교우관계를 유지했으나 그 이론이나 작풍

에는 동조하지 않았다.

권옥연의 ‘추상’

초기 파리생활을 엿볼 수 있는 남관의 작품 ‘파리야경’과 ‘시장’에서는 고독한 외국생활에서

오는 고뇌와 외로움이 신비스러운 형체로 표현됐다. 이세득의 ‘하오의 테라스’는 밝은 색채

구성으로 표현된 프랑스 대표적인 작가 마티스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그는 파리생활이 익숙

해지면서 향토적 주제를 선호하게 되고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모해 간다. 서정적 추상화로의

변화는 ‘염(念)과 허(虛)’에서 볼 수 있다. 권옥연도 유럽의 추상미술을 접하면서 자신만의 독

자적인 추상양식을 구축한다. 작품 ‘추상’은 비정형의 형태와 두툼한 질감, 청회색의 절제된

색채 등 앵포르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손동진은 탈춤과 달빛 환상, 그리고 경주를 주제로 한 낙토(樂土)에 천착했다. 파리에서 오히

려 우리 전통을 재발견한 것이다. 낙랑, 신라, 고구려 등 전통소재를 서구적 표현양식을 사용

하여 새롭게 표현하였다.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동시대 국제미술 흐름에 동참하

고자 했다.

김환기의 ‘항아리’

김환기는 한국적 소재를 추상화로 표현한 ‘항아리’, ‘산월’을 선보였다. 그는 “파리에 와서 본

거장들의 작품에는 감격의 노래가 있다”며 “지금까지 내가 부르던 노래가 무엇이었다는 것

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다”고 고백했다. 26일까지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김환기 전에

선 뉴욕시대 점묘시리즈도 볼 수 있어 비교해 보면 좋다.

신세계갤러리 황호경 관장은 “1세대 재불작가들은 서양미술의 논리는 받아들이되 한국인이

라는 태생적인 문화적 배경은 살리고자 했다”며 “서양미술과 동양미학의 융합을 시도했던

우리 작가들의 노력이 결국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유행만 좇는 젊은 작가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02)310-1924

편완식 선임기자

입력 2012.02.13 (월)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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