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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파리, 한국의 거장들 | 경향신문 | 2012.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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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파리, 한국의 거장들
ㆍ‘1958 에콜 드 파리’전
“파리에 도착한 지 며칠 안되는 어느 날 비에 젖은 파리의 은빛 나는 거리를 걸어서 하숙으로 돌아
왔을 때 나는 이상한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지고 말았다. 비에 젖은 내 눈앞에 아른거리는 센 강물
이며 거리의 마로니에가 부옇게 흐려서 둥둥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30대 청년 시절 프랑스로 유
학을 간 화가 손동진(80)은 처음으로 루브르 미술관을 견학한 후 느꼈던 알 수 없는 흥분감을 회화
적인 글로 표현했다.
손동진이 머물던 1950년대 파리는 전 세계의 수많은 예술가들을 유혹하던 세계 문화의 수도이자
현대미술의 용광로였다. 당시 그곳에는 손동진을 비롯해 한국 현대미술의 대가들로 꼽히는 김환기,
권옥연, 남관, 이성자, 이세득 등이 있었다. 이들은 파리에서 유럽의 서정적 추상운동을 직접 경험
하면서도 한국적 주제와 전통성이 녹아든 독자적인 추상미술의 세계를 열었다. 20세기 초반 유럽의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의 중심에 서 있던 샤갈,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 예술가들을 총칭하는 ‘에콜 드
파리’에 비견할 만한 움직임이었다.
권옥연, 추상, 1960년작, 캔버스에 유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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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충무로 신세계갤러리에서 다음달 19일까지 열리는 ‘1958 에콜 드 파리’ 전시는 이들 1세대 재
불(在佛) 한국작가들이 머물던 시기인 1958년 전후의 작품과 자료들을 한 데 모았다. 한국 현대미
술을 정착시킨 대가들의 파리 시절 작품세계를 비교하며 볼 수 있는 기회로 한국전쟁의 비극을 딛
고 이들이 꿈꾼 세계를 회화작품으로 접할 수 있다.
‘에콜 드 파리’의 중심지 파리 몽파르나스에 화실을 마련한 남관(1911~90)은 파리 생활을 거치면
서 앞서의 인물·풍경화에서 앙포르멜 추상화로 화풍이 변모한다. 앙포르멜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서정적 추상회화의 한 경향이라 정형화된 추상, 기하학적 추상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난 것
으로 격정적이며 주관적인 추상표현주의이다. 그의 ‘시장’엔 파리 생활의 고독과 외로움이 신비스
러운 형체로 표현되었다. 권옥연(1923~2011)도 1960년 작품 ‘추상’에서 비정형의 형태와 두툼한
질감, 청회색의 절제된 색채 등 앙포르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김환기(1913∼74)는 파리에서 달,
백자, 산, 학, 매화 등 한국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 서정적 추상화를 그렸다. 파리 개인전에 출품된
‘항아리’ ‘영원의 노래’ ‘새들’ 등은 회화로 표현된 ‘시’로 불릴 만큼 고도로 절제된 조형요소로 한국
적 미의 세계를 담았다. 손동진은 서구의 현대미술을 직접 보면서 오히려 신라금관과 탈춤, 석굴암
등 한국적 전통을 재발견했다.
이세득 1961년작 ‘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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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1950년대작 ‘항아리’
한국의 ‘에콜 드 파리’ 작가들은 서양미술의 논리를 받아들이면서 한국인이라는 태생적인 문화적
배경을 살리고자 했다. 서양미술과 동양미술의 융합을 시도한 이들의 노력으로 한국 현대미술은 독
자성을 갖출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들 작가의 작품세계를 현장감 있고 입체적으로 살펴보
도록 작가들과 관련된 각종 인쇄 출판물, 언론기사, 사진 자료도 전시된다.
<주영재 기자 jyeongj@kyunghyang.com>
입력 : 2012-02-20 21:10:40ㅣ수정 : 2012-02-20 21: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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