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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실의 미술한담]남관작품 국제사기사건 연루 초면인 부인은 급히 | 해럴드경제 | 200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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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실의 미술한담]남관작품 국제사기사건 연루 초면인 부인은 급히

만나자며…

| 기사입력 2005-12-07 14:11 | 최종수정 2005-12-07 14:11

남관 화백(1911~1990) ①

1911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1935년 동경 태평양미술학교 분과를 졸업한 남관

화백은 대망을 안고 1955년에 도불했다. 선천적인 재능과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한국작가로서는 최초로 1958년 유명한 살롱 드메에 초대되면서 프랑스 화단에 진

출했다.

6.25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한 그의 작품들은 고대의 상형문자나 사원의 돌담, 흐트

러진 흔적을 연상케 하는 추상작업이었다. 특히 남관 화백이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966년 망똥회화비엔날레에서였는데, 그는 그곳에서 피카소가 특별 출품

하고 아르망, 부페, 타피에스 등 쟁쟁한 거장과 함께 참가해 당당히 1등상을 받았

다.

동양적인 추상회화작업을 13년간 계속해온 그는 자존심 강하고 작가정신이 투철했

다. 그는 유럽 화단에서의 명성을 뒤로한 채 부인 김진옥씨와 함께 1968년 귀국했

다. 1970년대 초쯤으로 기억된다. 내가 한참 그림 수집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그의

귀국전 기사를 보고 신세계백화점 갤러리로 달려갔다. 감동한 작품은 꼭 사야 하는

성격 탓에 15호짜리 작품도 한 점 구입했다. 그리곤 응접실에 걸어두고 아이들에게

추상화 작품은 이런 것이라며 설명도 해주고, 찾아온 손님과 친구들에겐 남관 화백

을 소개하며 함께 즐겼다. 아름답게 펼쳐진 푸른색의 맑은 가을하늘 위에, 인체 모

양의 형상이 춤을 추는 그림은 볼 때마다 신비로왔다.

이후 나는 1977년 화랑을 개업하면서 내 방 구석에 남관 화백의 그림을 걸어 놓았

는데 이를 본 한 고객의 끈질긴 요청에 못 이겨 넘기고 말았다. 아직도 그 작품을

회상하면 마음이 평온해 진다. 아득한 옛날의 풋풋했던 추억도 떠오른다. 푸른 색

깔의 희망과 생동감으로 화면 가득히 펼쳐진 남관 작품을 그 누가 싫다 하리요.

그래서일까? 화백과 관련된 큰 사건이 터졌다. 1985년도에 일어난 남관 작품 국제

사기 사건이 그것이다. 일요일로 기억된다. 집(약수동)에서 모처럼 쉬고 있는데 11

시경 전화벨이 울렸다. 낯선 여성의 음성이었다.

"나, 김진옥인데요. 바쁘지 않으면 여기 신라호텔인데 좀 만났으면 하는데요."

다짜고짜 만나자는 전화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나, 소설 쓰는 김진옥이에요. 남관

씨 아내 되는 사람인데 모르세요?" 한다. 초면임에도 몹씨나 당당했던 그녀는 할

말도 있고, 책도 나와 한 권 주겠다는 것이다. 커피숍에 나간 내게 그녀는 책부터

불쑥 내밀며 가지라고 한다. 어리둥절해 하는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는 `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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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국제사기사건`에 관한 전말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에게 "화랑협회

회장으로서, 남관 화백과 화랑협회 정화작업 차원에서 꼭 할 일이 있다"며 격앙된

어투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선화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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