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 · 추상의 세계 · 03

주제와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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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중에서 상형문자의 논리를 구사한 사람은, 고 남관 선생이 있다. 그 사람은 암호같은 상형문자로 화면을 채워, 회화에 서예적인 시각적 속성을 도입하여, 독특한 작가세계를 개척해 나간 바 있다. 황주리에 있어서는 기초(elementary)상형 코드는 상형문자(남관의 경우의)가 아니고, 각양각색으로 그려진 형상들이 마치 무슨 그림카드를 죽 나열해 놓았던가, 아니면 필름 스틸의 한 장면식을 짤라 적당히 나열해 놓은 것 같다. 만일 이 작품의 맨 윗줄의 이미지들을 왼쪽 끝 첫째칸에서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보아간다면 한 다섯 이미지의 어두운 색조의 장면이 계속되다가는 마치 실수로 그 다음 칸의 이미지는 네거티브의 흰 색상의 틀이 되어 갑자기 튀어나온다. 다시말하면, 이 캔버스 위에 갖가지의 형상으로 메워진 수 없이 많은 칸들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읽던지 간에, 거기엔 독특한 리듬과 움직임이 있다는 말이다. 조그만 이미지 하나 하나들도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려진, 구상의 이미지들이 모여 구성하는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주는 미학적 요소는 무엇이라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 즉 추상적 그 무엇이다. 그리고, 그점은 황주리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점이다. 그러니 우선 다른 작품에서 황주리의 기본 화면구성의 논리의 다양함을 살펴본 후, 이 점으로 다시 오기로 하자, 왜냐하면, 1984년 이후 황주리 작품세계에서는 바로 이 기본 논리와 그것의 창의적 다양성과 전개가 그의 종합적 탐구의 기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1982년에 제작된 「추억제」라는 제목의 작품을 보자. 구조적인 면에서 전자와의 다른 점은, 전자에선 한 칸을 한 이미지가 메운데 반해, 이번에는 한 이미지가 몇칸을 차지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전자에서는 한 단 순한 미지가 매 칸을 하나씩 메운데 비해, 각 칸을 메우는 이미지들 중에는 어떤 스토리가 있는 구상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이 작품의 창살구조도 좀더 복잡다양해졌고, 한 이미지가 앞 뒤, 아래 위로 몇 칸을 차지하는 경우에는, 이 작품을 세로로 읽던, 가로로 읽던, 어떤 불협화음의 효과를 주어, 작품 전체가 주는 효과는 좀더 다양·복잡해 진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살려면」이라는 작품은 얼핏 보기에는 창살구조(grid structure)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창살이 기하학적이 아니라는 것일 뿐, 전화면은 하나의 예외 없이 이그러진 얼굴 형태의 조그만 칼들로 메워져 있다. 각칸은 이그러진 얼굴 형태의 외곽이 각기 그 칸의 공간을 정의한다. 빨강, 파랑, 초록, 노랑의 색감은 율동적으로 선율하는 이미지의 리듬이 연출되어, 지극히 음악적인 역시 무엇인가 한마디 말로 표현되어질 성질이 아닌, 추상적인 그 무슨 느낌을 받게 하여준다. 그러면 도대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란 무슨 말인가? 사실은 말로만 표현할 수 없는 게 아니라, 그림으로도 재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말한다. 물론 황주리의 이상의 세 작품들이 그림으로 꽉차있지만, 하나의 중심 이미지가 있어서 그것을 중심으로 무엇을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상징으로도, 말로도, 그림으로도 표현하고 재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란, 바로 칸트가 말하는 숭고함(Subime)일 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우주','인류, '선', '정의', '예술의 죽음' 같은 절대의 개념들은 말로, 그림으로도, 아니 다른 어떤 수단으로도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절대적인 그 무엇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부정표상(negative-representation), 즉 추상을 통해 암시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시각적인 것들 중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이미 전제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약 2910년 이후의 서구 추상미술이 추구해온 것이다. 즉 아름다움의 미학속에서 재현적 회화를 추구하는 서구의 전통미술이 역사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면서, 현대미술은 "미술이란 무엇인가?"의 철학적인 질문을 하는 철학행위를 미술행위화하였으니, 이런 질문 행위가 미술행위가 된 이상 이런 질문은 칸트가 이미 밝힌대로 재현적 그림이나 언어로 표현될 수 없어, 숭고함의 미학으로의 전환으로서 역사상으로는 추상미술의 추구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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