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예술 · 일본유학에서 도불전까지 · 03
도불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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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진 고적 1966 옛 문명 기호의 흔적들: 도불 시절 남관은 프랑스 생활에서 이러한 경제적인 고통을 받았으나, 작업에 있어서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다. 특히 파리에 머물면서 서구의 추상 미술을 접하게 된 그는 초기에 보였던 전통적인 구상 방식에서 벗어나 점차 형태를 없애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인간, 동물, 식물 등을 상형문자 같은 기호로 변형하여 일그러진 형상으로 등장시킨다. 그러나 이 형상들은 단순한 추상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전쟁이라는 현실적 체험에서 비롯되었다. 즉, 얼굴과 갑골문자의 형상들은 단순한 얼굴이나 기호라기보다는 상처받은 인간성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렇게 남관의 작품이 일그러진 형상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비극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화면을 이루고 있는 색채가 아름답고 환상적이기 때문에 마치 꿈이나 우주적 공간을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신비로운 화면에 대해 평론가 이일 씨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갖가지 흔적들이 마치 잊혀졌던 세월의 잔재물처럼 공간 위를 부유하고 또는 좌초한다. 분명히 그 공간은 시간의 주름살을 지닌 공간이다. 공간 속에 시간이 숨쉬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양자는 다같이 무한 속에 용해되어 하나의 현실로 변신한다. 우리의 삶처럼 신비롭고도 거역할 수 없는 현실로..." 또한 남관은 오랜 세월을 지낸 듯한 낡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얼룩, 발묵(대강 칠한 옅은 먹물이 마르기 전에 짙은 먹물을 화면에 뿌려 형상을 표현하는 기법), 데칼코마니(물감을 칠한 후 다른 종이로 찍어내는 기법), 뿌리기 등의 기법을 이용하였다. 이렇게 남관은 옛 문명의 흔적으로 남은 기호들, 전쟁의 기억 속에서 끌어낸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변형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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